……춥지만, 우리
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
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이렇게 물어보기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
―김강태(1950∼2003)
SF(Science Fiction) 영화에는 외계인도 나오고 우주선도 나오니까 황당한 거짓말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SF의 묘미는 ‘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같은, 더 낯선 상상력에 있지 않다. 이 장르의 본질은 인간 바깥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라는 명제에 있다. 사람 아닌 자의 눈에 비친 사람은 어떠한가, 혹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걸 탐색하는 것이 SF 장르다.
차가운 AI와 인조인간 사이에서는 뜨거운 인간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 심정으로, 우리는 추운 겨울날을 맞이하여 따뜻한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세상에 비정함은 점차 늘어가고, 따뜻함을 얻을 창구는 줄어가니까 더욱 그렇게 된다. 세상도 춥고, 사람도 춥고, 날씨도 추울 때 눈은 자연스럽게 따뜻함을 향한다. 그래서 이 시를 소개하게 되었다. 짧지만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시. 요즘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첫 구절이 말줄임표로 시작한다. 조금 머뭇거렸다는 말이다. 다른 할 말도 있었지만 추렸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춥지만, 우리 이제”, 라고 말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춥지 않은 일이 나오게 되어 있다. 시인은 그것을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채소 한 단 사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채소 행상은 저 채소를 다 팔아야 자리를 걷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는 것이다. 나 지금 퇴근하니 당신도 어서 따뜻한 집에 돌아가시라고. 쪽파 한 단에 얼마예요? 실제로는 이런 질문이었을 텐데 시인은 표현을 시적으로 바꾸었다.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 라고. 겨울 한 자락 따뜻해지기가 이렇게나 쉽다. 쉬운 걸 하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