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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의 언덕 - 윤동주>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 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
이성호 시인이 자비를 들여가며 해마다 여는 '윤동주의 밤'에 암송시 대회가 추가 되었다. 이왕이면 수동적 참석보다는 능동적으로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나도 참가신청을 했다. 따로 암기할 시간을 낼 필요도 없이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니 오고가는 시간에 외우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암송할 시를 고르기 전에 원칙을 정했다. 널리 알려진 시 보다는 덜 알려진 시, 그리고 짧은 시보다는 긴 시를 한번 찾아보자고. 그것이 행사 의미에도 더 부합될 것만 같았다. 우선 윤동주 시집을 한 권 샀다. 교과서에 실렸거나 유명한 시 몇을 빼고는 윤동주 시를 많이 알지 못했기에 이참에 공부도 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시가 마음에 와 닿았지만, <쉽게 씌어진 시>와 <투르게네프의 언덕>이 유독 마음에 꽂혔다. <쉽게 씌어진 시>는 가슴이 메이도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였지만 좀더 알려진 시란 생각에 결국 <투르게네프의 언덕>으로 정했다.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김기림의 <길>이란 시처럼 단수필이 아닌가 할 정도로 수필에 가까운 산문시였다. 쉽게 읽혀질 뿐만 아니라, 단락마다 눈 앞에 그림으로 펼쳐져 기억하기에도 좋았다. 게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윤동주의 겸손된 마음과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와 내 마음을 훈훈히 데워주었다. 거의 한 달 동안 나는 윤동주시에 푹 빠져 살았다. 동족을 사랑하고 시대를 아파하며 이국땅에서 죽어간 젊은 시인 윤동주! 누군들 그를 기리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투르게네프의 언덕>이란 제목이 계속 낯설었다. 윤동주는 왜 이 시에 <투르게네프의 언덕>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디오게네스도 아니고, 거지 소년들을 본 것과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정말 아리송했다. 그러다가 투르게네프의 시 <거지>를 접하고서야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표절에 가까울 정도로 두 시가 비슷했다. 투르게네프의 시 <거지>가 결국은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에 연상작용을 불러일으켜 준 장본인이었다.
윤동주는 앞서 걸어가는 세 소년 거지를 보며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떠올렸던 것이다.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파우스트> 등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투르게네프는 1000명이나 되는 농노를 거느린 대지주의 아들이었으나 평생 농노제를 증오하고 맞서 싸울 정도로 인간에 대한 그것도 약자에 대한 연민이 남달랐던 작가다. 1818년생이니 거의 200년 전 사람이요, 척추암으로 1883년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그가 떠난 지도 100여 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는 윤동주에 의해 살아나고 독자들에 의해 거듭 부활하고 있다.
<거지>라는 작품에서도 그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실화요, 시적 설정이 아님에 더욱 큰 감동을 자아낸다. 줄 것이 없어 거지 손을 덥석 잡아주며 용서를 청하는 대지주의 아들! 그리고 호주머니에 죄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지 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려 선듯 건네지 못하고 있는 윤동주! 두 시인의 마음이 그들의 작품보다 앞서 내게 달려와 안긴다. 그들은 갔어도 그들은 시 속에 살아 있다. 한 편의 시가 주는 감동과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설득력. 그 속에서 시의 힘을 느낀다.
눈을 감고 <투르게네프의 언덕>을 다시 음미해 본다. 언덕을 오르고 있는 세 거지 소년과 그 뒤를 따르는 윤동주, 그리고 그들을 말없이 지켜보는 저녁 황혼. 그리고 이 풍경화 속에 또 하나의 그림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청구회 추억>을 쓴 신영복 교수. '똑똑한 옷차림'을 갖추지 못한 여섯 명의 빈궁한 꼬마와 친구가 되어 서오릉 길을 함께 걸었던 신영복 교수 역시 윤동주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1966년도 일이었으니 그 후로도 세월은 흘렀다. 그 뒤를 이어 <투르게네프의 언덕>을 오르고 있는 이는 누구며 그들과 동행해 줄 이는 또 누굴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가난이 있는 한, <투르게네프 언덕>은 영원한 테마의 길이 아닐까. 비교 감상을 위해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첨부해 둔다.
<거지 - 투르게네프>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늙어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 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헤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푼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그는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