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리의 언어들 / 박금아
숨소리도 미동도 없다. 턱없이 작은 입은 침묵이 지은 집이다. 오른쪽으로 쏠린 두 눈은 외부세계와 눈맞춤을 피한 듯 반응이 없다. 깊은 바다의 파고를 읽는 듯, 한 곳만을 응시할 뿐이다. 자세히 보면 여러 마리가 몸을 포개고서 죽은 듯이 있다. 사노라면 있기 마련인 자리싸움도 포기한 채 구석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퉁이를 지키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을 하던 남편을 도와 무던히도 열심히 달렸건만 호의호식은커녕 먹고 사는 일조차 걱정 줄을 놓을 수 없었다. 남편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고, 그녀는 남편이 남겨준 빚더미에 앉았다. 회생파산 업무를 담당하는 친구는 '파산신청'을 권했지만, 어떻게든 갚아보겠노라고 했다. 찔끔 눈 한번 감아버리면 외면해버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많은 빚을 지고도 편하게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처럼 말이다. 빚을 포기하지 않은 이상, 삶은 만만하지 않았다.
횟집을 열었다. 새벽 시장을 다녀와서 겨우 두세 시간 눈붙일 뿐, 가게에서 살다시피 했다. 횟집 입구에 수족관이 있었다. 속을 들여다보면 우럭이며 방어, 작은 새우들이 좁은 수조를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다. 먹잇감을 위해, 또는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몸짓이 자신을 보는 듯했다.
횟감을 고르느라 뜰채질을 할 때였다. 어항 바닥에 몸을 붙인 도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찰나였다. 도다리의 두 눈이 눈망울을 굴린 것은. 뜰채의 방향을 살피느라 그랬을 게다. 언제 물 밖으로 건져질지 몰라 한시도 감을 수 없는 두 눈은 툭 튀어나왔다. 살아내야 한다는 신념은 시선을 오직 한 쪽으로만 쏠리게 했을 것이다. 횟감을 뜨기 위해 뜰채질을 할 때마다 생겨난 물 갈피들이 수족관 모서리로 몰려왔다. 수면을 넘지 못한 파도들은 간신히 살아남은 도다리의 두 눈 사이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돌기로 남았다.
세상을 훑고 온 바람은 모서리에 다다라서야 몸을 틀었다. 골목 귀퉁이 횟집에도 황소바람이 몰아닥쳤다. 한눈팔지 않고 달려온 삶의 끝이 벽돌 한 장 반듯이 세울 수 없는 모퉁이 자리라니. 그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여자 혼자 새벽까지 장사하다 보면 억척이 날아들기 예사였다. 빚을 갚으면 갚는 대로, 덜 갚으면 덜 갚는 대로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날 선 말에 자주 마음이 베었다. 한 푼 빚진 것 없이 온전히 제 것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 모든 바람을 휘감은 모서리의 자리는 한 번쯤은 속 시원히 내뱉어버리고 싶은 말까지도 꿀꺽 삼키게 했다. 도다리는 깊고 푸른 바다를 헤엄칠 날을 꿈꾸며 수족관 밑바닥의 시간을 견디었을 터. 그녀도 도다리가 되어야 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만 살 수 있던 날들이었다. 하루를 죽기로 살아냈다는 증거로 일수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허물어진 집에 벽돌을 쌓는 심정으로 달력의 한 칸 한 칸을 메꾸어 갔다. 오금 저리는 시난고난의 생을 몇 번이나 뒤집고 싶었을까. 파도는 한시도 멈춘 적 없었다. 흔드는 것으로 모자라 터전을 송두리째 파헤칠 정도로 몰아붙였다. 붙잡을 것이라곤 실오라기 하나 없는 허공뿐, 살자면 바닥으로 몸을 바짝 더 붙여야 했다. 몸을 불리며 달려드는 파도마저 삼켜버렸다.
그 무렵, 한 원로시인을 만났다. 근처에 살던 시인은 자주 횟집을 찾아 도다리회를 주문하고서는 시를 들려주곤 했다. 시인이 오는 날이면 시인의 테이블 쪽으로 귀를 열어두었다. 파도는 바다가 보내는 절절한 음성이었다. 그녀가 죽기를 각오하고 삼켰던 숱한 파도들이 꽃숭어리가 되어 세상 바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 횟집 계산대에 앉아 그 말들을 글자에 담았다. 주문서 여백에, 영수증 뒷면에…….
‘시(詩)밥’이라고 해야 하나. 시는 한 그릇의 밥이 되어 주었다. 도무지 해독할 수 없었던 세상의 난해한 음표들을 해석하게 하고, 고통을 연주하게 하는 악기가 되어 주었다. 그녀가 고백한 대로 시는 '비바람 맞으며 울음을 참는 한 그루 나무, 또는 한 송이 꽃’이었지 싶다.
언젠가부터 내 핸드폰에서 그녀는 ‘도다리’로 검색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魚譜)인 ‘우해이어보’에서는 ‘도다리’를 ‘도달어’로 부른다. ‘도달한 물고기’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도달(到達)’이란 말의 어원이 도다리의 삶에서 왔음을 가늠케 하는 말이다. 어영부영 허튼 발짓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밑바닥의 삶을 온몸으로 수행한 결과로 얻어낸 경지’ 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도달’의 경지를 찾아가는 그녀의 시편들은 밑바닥을 지키는 시린 영혼들에게 한 그릇의 따뜻한 밥이 되어 주리라 믿고 싶다.
그녀가 또 시집을 냈다. 네 번째 시집이다. 심해어장처럼 시푸른 표지를 열면 ‘도다리의 언어들’이 들려온다. 막다른 곳에 다다른 것들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생명의 언어들이. 또 회 주문이 들어왔나 보다. 수족관으로 향하는 그녀의 걸음이 빨라졌다. 뜰채질에 거품이 일어난다.
하얀 꽃밥이다.
<한국문학인 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