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예술가의 초상 / 김단
을지로 3가역 6번 출구 근처에 있다고 무심히 말하더군요. 허름한 곳이라고 일러주었는데 못 들은 척했습니다. 대로변에서 미술관 간판만 찾았습니다. 눈에 띄지 않더군요. 혹시나 하고 뒷골목 안으로 쑤~욱 들어갔습니다. 미술관은커녕 아크릴 간판을 제작하는 자잘한 공장들이 보이고, 여기저기서 철을 절단하는 굉음이 들립니다. 설마, 철공소 옆 미술관? 이럴 수가! 철공소 끄트머리 낡은 건물에 민망할 정도로 초라한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여기서 전시합니다.
‘여기는 전시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로 읽힙니다. 전시장이라고 할 수 없는 곳에서 전시를 하려니 이런 옹색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도 머무르지 않을 것 같은 이곳이 서울시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내가 찾던 바로 그곳, ‘을지로 OF 미술관’이랍니다. 요즘 뜨는 곳이라고, 시쳇말로 ‘힙(hip)한 곳’이라는 말은 억지춘향입니다. 더 이상 내몰릴 곳이 없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현장으로 보입니다.
오층까지 올라오십시오.
이 말에 이끌려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라갑니다.
힘내십시오. 거의 다 왔습니다.
눈물겨울 정도로 친절합니다만, 궁서체의 글씨체가 오히려 피로감을 가중시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것은 지하철택배 할아버지들이 붙였다는 휘황찬란한 금수강산 포스터와 구질구질한 내부 모습입니다.
오층입니다. 옥탑이네요. 숨통이 트입니다. 복잡한 을지로 골목이 발아래에 있습니다. 을지로 3가는 바삐 돌아가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드디어 ‘을지로 OF 미술관’입니다. 작은 옥탑방 3개를 전시장으로 꾸며 놓았는데, 이 방들이 근처 철공소 노동자들이 묵었던 사글셋방이었답니다. 한쪽 방문엔 묵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습니다. 낯섭니다. 명색이 미술관인데 말입니다.
안내하는 분이 등장했습니다. 장소가 사람을 만들지요. 근사한 갤러리에 있었다면 그분도 멋있게 보였겠죠. A4용지 반만 한 종이를 건네며 읽어보고 관람하라고 친절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실내가 어두컴컴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훌륭한 작품도 채 빛을 발하기도 전에 퇴색되어 버려질 것 같습니다.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여남은 희망을 가지고 나선 걸음이었습니다. 작품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훑어보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분신을 그곳에 남겨두고 난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습니다. 골방 밖은 광명천지입니다. 뒷골목을 빠져나왔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철을 절삭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환청처럼 귓전을 때리고, 휘황찬란한 금수강산 포스터가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한참을 헤맸지만 심란한 마음은 매한가지였습니다. 늘 그렇듯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OF의 운영자가 남긴 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떠나버리는 건물로 들어가는, 남들이 별 관심 없어하는 골목 구석 같은 곳을 빤히 들여다보는, 그러다 문득 거기 무언가 혹은 몸이 아파 아직 나오지 못한 누군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 대개 예술이 그런 걸 쳐다본다.
가슴앓이가 이것 때문이었나 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남들이 떠나버리는 건물로 들어가는 그에게 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는데, 어찌 생면부지의 당신은 그를 들이고, 그의 아픈 마음을 다독여 날것을 토해내게 했나요? 먼 길 가는 그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당신은 누구입니까?
가난한 예술가를 위한 공간은 없습니다. ‘을지로 OF 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지향하는 젊은 그들에게 특화된 꿈의 공간입니다. 누구나 전시를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들 중엔 신인도 있지만 유명한 작가도 있습니다. 벌써 다음 전시 일정이 잡혔다는 작가도 있습니다. OF에서 전시를 하려는 작가가 줄을 잇는다는 희소식도 들립니다. 화이트큐브(white cube) 갤러리의 전시나 대형 기획사의 전시만을 우선시했던 젊은이들도 을지로의 신선한 맛을 즐기려고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슴 아픈 일이 바로 이 자리에서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곳을 싹 다 갈아엎어버리고 멋진 빌딩을 짓는다는군요. 새로 짓는 그곳에 예술가들의 공간을 마련해주진 않겠지요?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곳보다 더한 곳으로 또 밀려나야 할까요? 번듯한 곳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전시합니다.’란 말을 하지 않아도 전시장이란 걸 알 수 있는 곳이면 됩니다. 그곳에서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신선합니다. 날것이지만 참 맛있습니다.
<에세이문학 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