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 김혜강
안개가 찾아오면 마을은 신비한 기운에 감싸인다. 문득, 고위 정보부의 특수 요원들처럼 안개는 사람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세상의 무엇인가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한 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우주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조물주가 안개로 하여금 연막을 치도록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안개가 갠 후에는 대개 날이 깨끗하고 맑다. 아니면 물상과 나무들이 그들만의 리듬으로 내밀한 우주의 섭리와 교신하기 위해 안개를 불러들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주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처럼 존재하는 것들에게는 태생적으로 따라야 하는 자신들만의 섭리가 있다. 안개는 신비하다.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안개가 나타나면 마을은 마법에 걸린다. 건물들과 길, 공원의 나무들을 비롯해 눈에 띄던 모든 것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습을 감춘다. 하늘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아니 사라져버리는지 숨어버리는지 알 수 없다. 거실과 안방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던, 하얀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 마당을 가진 성당도 감쪽 같이 모습을 감춘다. 판단 정지된 의식처럼, 안개 속으로 사라진 세상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시선은 안개를 뚫지 못하고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또한 이내 모습이 사라져 버린다. 안개가 낀 날에는 타자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짊어지고 있던 긴장들을 내려놓아도 좋다. 현실 속에 환상계가 나타난 것처럼 몇 미터만 떨어지면 서로를 볼 수 없는, 풍경 가득 안개가 차는 날이면 안개 속이 무척 궁금해진다. 안개는 백색의 익명성을 띤다.
변화하는 기상 조건에 의해 안개가 발생한다지만, 자연과학적 상식과는 무관하게 안개는 비밀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안개 특유의 정서인 푸근함이 솜사탕처럼 녹아 사방에서 물밀어 오는 느낌도 좋다. 안개에 시계가 막혀버리면 막힌 시야만큼, 잡념들도 어디론가 사라진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종종 눈에 보이는 것들은 알게 모르게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의식이 움직이는 시선을 따라서 강아지처럼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안개가 끼면 시도 때도 없이 싹을 틔우는 생각의 밭도 나른한 단잠에 드는지 두서없는 싹을 밀어 올리지 않는다. 폭발적인 지식의 생산은 모르고 살아도 될 분야까지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변화를 타고 흐르는 시대의 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정신없는 세상이 안개가 끼면 휴가를 받은 것처럼 조용해진다. 안개의 익명성은 쉼표다.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안개도 지우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소리들이다. 그렇다고 안개 속 소리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미주알고주알 떠벌려지지는 않는다. 안개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안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입 다문 조개의 속살처럼 까발려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안개로 인해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시야를 확보하지 않은 사람의 부주의 탓이다. 그런 까닭에 다소 위험한 면도 있지만 특정한 목적을 위한다며 음모 같은 것을 안개는 절대 꾸미지 않는다. 치부를 알고도 상대를 토닥이며 용기를 주는 오랜 친구처럼 안개는 가슴이 넓다. 음모를 꾸미거나 굳이 하지 말아도 될 말을 내뱉어서 구설에 오르내리는 쪽은 사람이다. 안개는 입이 무겁다.
가끔 이 마을과 저쪽 마을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서로 간 시샘을 할 때가 있다. 우리 아파트는 브랜드가 최고잖아. 공원을 옆에 뒀으니 누가 뭐래도 우리 아파트 입지가 최고지. 우리 아파트는 학교를 품고 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야. 네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기준의 근거가 생기고 준거가 존재하게 되면 비교하는 마음이 일어, 내 것을 우월한 위치에 놓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모양이다. 안개가 나타나면 비문증 같은 비교는 하등 의미가 없어진다. 네 것이 보이지 않으니 시선은 렌즈에 모이는 빛처럼 자신으로 향하게 된다. 사람은 관계 속에 사는 사회적 동물이지만 자신을 성찰하면서 내면세계의 균형을 잡을 줄도 아는 인격체다. 안개는 사람을 내면으로 들여보낸다.
어릴 때, 세상을 꽉 채운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 나도 어디론가 사라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안개는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나만 그대로 있어서 안개가 요술을 부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언젠가는 안개가 어떻게 요술을 부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호숫가에도 가보았다. 어른들이 안개는 물에서 피어오른다고 하여 물속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처럼 물속 어디에서도 안개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려나 근원은 알지 못하더라도 선한 것은 좋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인간도 선하면 좋고, 선한 사람이 내뿜는 기운은 세상과 인류의 그늘진 데를 밝히는 빛에 가서 보태어진다. 안개는 선하다.
지식과 지혜의 불균형 속에서 너무 많은 말과 너무 많은 정보, 가짜 같은 가짜와 진짜 같은 가짜가 위험 수위를 넘어 삶의 곳곳을 잠식해버린 지 오래다. 그런 세상을 찾아 사유하는 철학자처럼 잔잔하고 입이 무거운 안개가 왔다. 밖은 안개에 싸여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신비한 푸근함으로 다가오는 안개가 마음 속 캔버스에 또 다른 운치와 다정을 덧칠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 마을은 기수역을 거느리고 있어 내륙지방과 달리 안개가 나타나는 횟수가 잦고 농도도 짙다. 해무라고 하기는 좀 약하지만 그래도 짙은 편이다. 종종 몇 미터 눈앞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당할 만하다. 안개가 찾아오는 날이면 입 무겁고 마음 넓은 친구가 찾아오는 것처럼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