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작은 아파트 현관에 허름한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있다. 혼자 살기 무섭다고,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 신발을 그대로 두었다. 그 운동화를 볼 때마다 멍울진 그리움이 흔적으로 남아 낯익은 조각 그림이 눈앞에 떠다닌다. 감물 든 베적삼처럼 씻고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페인트 자국들, 사시사철 일터마다 말없이 동행하며 세상의 낮고 누추한 바닥을 오체투지로 걸어온 신발이었다. 양탄자 한 번 밟아본 적 없이 가장의 끈 불끈 동여맨 흙투성이 길 위의 삶이었다.
아버지가 몹시 그립던 어느 날, 현관에 쪼그려 앉아 살며시 그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발바닥 지문 사라진 노동의 무게에 몸으로만 닳고 닳은 오목가슴의 뒤축이 뒤늦게 보인다. 이제는 길 위에 나설 일도 없는 지금, 새척지근한 땀내만 낙오병처럼 남아 바람을 도색하던 아버지 손등을 어루만지고 있다. 황소처럼 일만 하던 아버지는 그 신발이 남의 것처럼 불편했을지, 맞춤처럼 편안했을지 새삼 궁금증이 몰려온다. 신발에 손을 가만히 얹어본다. 발을 잃은 그 신발, 부르튼 아버지의 발을 달래며 고된 세월을 함께 견뎌온 그 노고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땅을 딛고 일어선다는 것이다. 내적 자아의 상징이다. 누군가의 독립적인 존재 의미이고 자유인의 의지를 표상한다. 한 짝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망을 시작함과도 같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신발은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기능뿐 아니라 그 사람의 권위와 권력, 직업, 신분, 빈부, 희망, 출발, 이별 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신발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신발은 어느 한 사람의 선택을 받는 순간 그의 분신이 되어 함께 길을 간다.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한 장의 종이에다 기록하고 이것을 ‘이력서’라고 부른다. 신발은 곧 이(履)이며, ‘신발을 끌고 온 역사의 기록’이란 뜻이다. 신발은 주인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 여정이고 동반자며 삶의 현장이다.
길을 나서면 가장 먼저 길을 잡고 길잡이가 되는 것이 신발이다. 언제나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주인이 길을 나서면 앞장서서 하루를 시작한다. 천 리 먼 길도 주저하지 않고 밤낮도 가리지 않는다.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쳐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 법이 없다. 가시밭길을 걸어 진흙탕을 밟아도 불평 한마디 없이 늘 발아래 몸을 낮추는 묵묵한 겸손의 성자이다.
때로는 짓눌리고 짓밟히고, 돌부리에 걷어차여 찢어지는 고통이 와도 온몸으로 참고 견뎌낸다. 가장 낮은 바닥에서 아무 공로도 바라지 않고, 주변의 호사로움에 한치 기웃거림도 없이 오직 주인만을 위해 충견처럼 온 힘을 다한다. 그래서 벗어놓은 누군가의 낡은 신발을 보면 왠지 안쓰러운 생각이 들고,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무엇이든 다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보다.
신발은 삶의 바탕이자 존재의 굴레이다. 신발은 땅에 딛고 서는 것이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다. 신발을 신으면 앞으로 나가는 일뿐이다. 신코와 뒤축이 있는 이상 뒷걸음질은 없다. 신발을 벗을 때가 비로소 쉼표이다. 길에 묶인 생은 차갑고 가파르기만 하다.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 속에서 가장 넓은 세상으로의 항해를 꿈꾼다. 하루하루가 낯설지만, 신발은 결코 제 길을 벗어나는 법이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주인을 내려놓는 일이다.
댓돌이나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시간보다 빠르게 사느라 우당탕 뛰어 들어와 한 짝은 엎어지고 한 짝은 마루로 뛰어 올라오면 어머니는 말없이 신발 정리를 했다. 신발이 가지런하게 놓이면 어디를 가든 발걸음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신발 끈을 깔끔하게 잘 묶어라.’‘꺾어 신지 말아라.’ 하던 잔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자식들의 앞날이 반듯하고, 걸림돌이 없는 삶을 살라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집에 들어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만, 신발은 여전히 바깥에서 찬바람 신세다. 방안에 들어오는 날이 딱 하루 있었다. 음력 정초 신일(愼日)은 설날이면서도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기도 했다. 밤중에 야광귀라는 귀신이 와서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그 사람은 한해 재수가 없단다. 그래서 초저녁이 되면 방 윗목에 신문지를 깔고 온 가족의 신발을 감추어놓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발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만 사느라 위만 쳐다보았을 뿐 바닥의 신발에는 무관심했다. 흙탕길이든 비탈길이든 무작정 신발을 끌고 다녔다. 냄새나고 습기 찬 신발, 밑창이 닳아 맨발로 걷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고 구두코가 벌어져 인생이 통째로 벌렁거릴 때도 있었다. 그저 먼지나 ‘툭툭’ 털어냈을 뿐 빛나게 닦아보지도 못한 그 신발의 예리성은 단단하거나 경쾌하기보다는 ‘뚜벅뚜벅’이거나 ‘터벅터벅’이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구두장인 이야기가 나왔다. 오래 서 있어도, 오래 신어도 발이 편하다는 맞춤 구두가 보기만 해도 탐이 났다. 수제화는 발이 갑이다. 발의 모양과 상태, 부위별 길이와 두께를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 느낌 그대로 제작을 한다. 장인의 솜씨로 주인의 발을 과학적으로 측정해서 내 몸의 일부분처럼 꼭 맞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 발은 맞춤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었다. 견고하고 튼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오로지 문수에 의해, 색깔이나 디자인보다 가격에만 눈치를 보며 기성화를 신어왔다. 발에 신발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신발에 발을 맞추어야 했다. 때로는 발뒤꿈치가 까지고 볼이 좁아서 발가락이 얼얼하기도 했다. 맞지 않아도 발이 편해질 때까지 참으며 길들여 신을 수밖에 없었다. 뭐가 불편한 것인지도 몰랐지만 어떤 것이 딱 맞아 편안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인생도 한 켤레의 신발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생명을 얻지만, 인생의 첫걸음은 신발에 발을 넣었을 때일 것이다. 신발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도구이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내 발에 잘 맞아야 오래, 편하게 걸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발의 촉각은 예민해서 신발 안에 굴러다니는 모래알 하나에도 신경이 거슬리고 아파한다. 잘 맞지 않는 신발로 고생하는 발이나,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삶으로 고통받는 인생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삶을 평탄하게, 그 정도면 무난하다 싶을 정도로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세상에 진심은 다 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월이었다. 가슴은 뜨거웠으나 발 시린 날들이 많았고. 꿈꾸던 세상이 곧고 좋은 길만은 아니어서 내 신발은 종종 더러워지거나 찢어지는 날도 많았다. 고빗길이며 진창길도 때때로 나타났다. 그럴 때면 나를 되돌아보는 일보다 제 발에 맞지 않는 신발 탓을 먼저 하곤 했다.
지금 신고 있는 내 신발은 온전한지 모르겠다. 제 갈 길 제대로 걷고 있는지, 혹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채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도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잘 알고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 걷기를 시작한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 신발이 있어 부지런히 걸어왔을 뿐이다. 비록 울퉁불퉁하고 삐뚤빼뚤한 길이었지만 내 신발은 언제나 나의 영혼과 서사를 끊임없이 길 위에 새기고 있다.
아직 길 위에 있어 신발을 벗지 못한다. 힘들어 그 자리에 멈추고 싶어도 길은 아직도 멀고, 오늘도 내일도 살아 숨 쉬는 한 신발과 함께 걸어가야만 한다. 신발이 맞지 않아 불편하더라도 삶이 뒤뚱거리거나 비틀거리지는 말아야겠다. 비록 맞춤 구두는 아닐지라도 물새는 일이 없고,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신기료장수든 영험한 신(神)이든 수선이라도 잘 받으면서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