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의 하루는, 처마 끝에 달린 ‘구리 풍경’과 함께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는다. 유타주에 있는 구리산에 들렸다가 여행 기념으로 사 온 풍경인데 단돈 사십 불에 산 놈 치고는 제 값 이상이다. 방안을 기웃대며 사랑의 교신을 보내오면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산사나이가 산을 향해 달려가듯, 뱃사나이가 푸른 해원을 향해 돛을 올리듯 내 마음은 구리 풍경에 매달린다.
우선 모양새가 시중에 나도는 알루미늄 풍경같이 얄팍하지 않고, 구리의 중후한 멋을 지니고 있어 마음에 든다. 게다가 그 청아한 목소리라니. 추처럼 가운데 드리워진 삼각형 나무 원판을 중심으로 길고 가는 여섯 개의 몸체가 어우러져 내는 소리는 어느 악기도 흉내낼 수 없는 음색이다. 속을 비웠기 때문일까. 사운대는 잎의 속삭임 같이 크진 않으나 긴 여운을 남기는 노래. 때로는 댓잎의 노래로, 더러는 갈잎의 속삭임으로 촉촉이 가슴을 적셔온다. 귓가에 날아와 여울지며 흐르는 풍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아름답다 못해 애닯기까지 하다.
새벽에 듣는 소리가 다르고, 한 밤중에 듣는 소리가 다르다. 전자가 전깃줄에 팔분음표를 찍고 있는 명랑한 아침 참새를 연상시킨다면, 후자는 길 떠나는 철새를 연상 시킨다. 계절 속에 흐르는 풍경소리도 제 각각이다. 가을엔 바이올린 현의 떨림 같이 애상에 젖게 하고, 겨울엔 칼바람을 맞고 선 산울림으로 묵상에 젖게 한다. 그러다가 바람 자는 날에는 여섯 개의 몸체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침묵에 잠겨버린다.
그런 날의 풍경은 나보다 먼저 침묵의 무게와 값을 익혀버린 듯하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살며시 띄워 보낸 눈웃음 하나가 얼마나 가슴을 요동치게 했는지, 높은 웃음소리보다 눈가에 어룽어룽 맺히던 눈물이 또 얼마나 가슴을 파고들었는지 풍경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조용히 침묵하고 선 풍경을 볼 때면, 나는 내 어깨에 잠시 내려앉았다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던 첫눈의 긴 여운을 떠올리곤 한다. ‘멀리 있는 사람, 멀리 두고 그리워하자’하고 단단히 다짐하며 미동도 없이 서 있는 풍경. 만날 수 없음에도 그리움이 깊어갈 때면 나도 그런 모진 결심을 할 때가 있다. 즐거운 나날 사이사이 슬픔이 비칠 때, 풍경도 체념의 미덕을 익혀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와 아침저녁으로 교감하고 있는 풍경을 보면, 때로 창조주가 된 기분이다. 창조주가 흙에 숨을 불어 넣어 한 생명을 만들었듯이, 무생물에도 사랑을 불어넣어 주기만 하면 생명이 된다. 처마 끝에 걸려 끊임없이 사랑의 교신을 보내오는 구리 풍경은 더 이상 차가운 금속이 아니다. 푸른 혈맥 속에 더운 피가 흐르는 내 마음의 연인이다. 아니, 언제나 되찾고 싶은 내 사랑이다. 설레임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장미 꽃다발보다 더 많이 안겨준 사람. 그러나 누구보다도 너그러웠던 사람이다. 따지거나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릴 때에도 그는 지긋이 기다려주었다. 기다려준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사랑인 것을 나도 이제사 깨닫게 된다. 서로의 행운을 빌며 일곱 번 째 택시를 타고 떠나왔던 날, 그날따라 창밖엔 왜 그리도 바람이 자지러지게 불던지. 내 마음 속에 댕그랑거리며 금속성 울음을 울던 그 풍경이, 여기까지 따라와 조석으로 날 불러낼 줄이야. 이른 새벽엔 아련한 봄비로 찾아와 날 깨워주고, 깊은 밤엔 불 꺼진 창 밖에서 홀로 밤을 지켜주니, 님 중에도 이런 멋진 님은 없을 성 싶다. 내가 배반하지 않는 한, 결코 먼저 배반할 리 없는 든든한 님이다. 우리네 사랑 역시 영원을 다짐하지 않아도 될 믿음직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풍경을 통해 배운다.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바람 자면 바람 자는 대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사는 모습이 큰 선생을 얻은 듯 귀하다. 때로는 큰 스님 법문으로 다가와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자연의 설법으로 일렁이는 마음의 풍랑을 잠재우기도 하는 구리 풍경. 금처럼 찬란하진 못해도, 은처럼 빛나진 않아도, 청동으로 푸르를 구리 풍경을 보며 나는 이런 사랑의 노래를 바치기도 했다.
네 마음 수초처럼 바람에 흔들릴 때
내 마음 사랑 병에 이 밤을 앓고 있다
삶이란 흔들리고 앓으면서 조금씩 커 가는 것.
지금도 눈 감으면 구리 광산의 그 거대한 모습이 떨림으로 다가온다. 한 인간의 도전 정신이 빚어놓은 그 웅장한 역사.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성은 무한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화산 분화구 같이 뻥 뚫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산 무더기. 천 년 묵은 구렁이가 몸을 틀고 앉은 듯, 지하 수 천 피터를 뱅글뱅글 돌아 파내려간 길. 그 뱀띠 길로 개미처럼 기어가며 광석을 실어내던 수 백 대의 트럭들. 아득히 내려다보이던 로마의 원형 극장 같던 분화구에 서면 우린 한 점 점으로도 찍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때의 감격이 구리 풍경을 보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 어두운 광맥 깊숙이 묻혀 천 년을 넘게 기다리다가, 어느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구리 풍경. 그 기다림도 모자랐는지 다시 진열장에서 긴 날과 밤을 지새운 뒤에야, 이 작은 동양 여행객의 손에 닿았으니 그 끈적한 인연의 고리만 생각해도 새록새록 정이 간다.
이제 남은 날도 그와 더불어 끊임없는 사랑의 교신을 나누며 아름다운 삶을 가꾸고 싶다. 청아한 목소리로 내 삶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구리 풍경이 그러했듯이 긴 기다림의 자세로 마음 비우는 작업부터 해야 할까 보다. 욕심 같아서는, 구리 풍경같이 수더분한 친구도 한 두엇 두었으면 좋겠다.
(1999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