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저 너머의 집 / 김응숙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운데다 장마도 길었다. 아침이면 찜통 속에서 쪄진 것 같은 태양이 떠올랐다가 이내 비구름에 가려졌다.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는 빗줄기가 종일 창문을 그었다. 모든 것이 눅눅했다. 집안 어디라도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습기가 묻어나고, 손에 걸리는 대로 쥐어짜도 물이 뚝뚝 흐를 것 같았다. 내 마음도 하루 내내 우울 모드를 벗어나지 못했다.

눈물이 흘러내려 빗방울이 부딪치는 창문처럼 얼굴이 젖었다. 모든 것이 귀찮고 무기력했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서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물드는 창문을 지켜보았다. 남편이 내 눈치를 보다가 자장면을 시켜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비 오는 저 창문 밖 어둠 속으로 나는 마냥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오십 대 중반에 들어서자 부쩍 우울감이 찾아왔다. 폐경이 다가온 것이다. 내 마음에서 모든 색이 탈색되고 회색만 남은 것 같았다. 끝내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이대로 사라지고 마는가 하는 열패감에 시달렸다. 슬프고 서럽고 쓸쓸하고 침울한 상태가 번갈아 내 마음을 점령했다.

며칠 만에 비가 그치고 하늘이 희뿌옇게 갠 날이었다. 책장에서 이것저것 뒤적이던 나는 엽서 한 장을 발견했다. 일전에 민화 전시회에 갔다가 받은 것이었다. 붉고 푸르고 노란 원색들이 작은 엽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강렬한 색감이 나를 빨아들였다. 나는 즉시 컴퓨터를 켜고 민화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발견했다.

간혹 사극 드라마에서 왕의 대전이나 왕비의 침소에 걸려있던 화려하고 웅장한 그 그림을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몽땅 크레파스로 그린 몇 장외에는 그림이라고는 그려본 적이 없는 내가 어째서 그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 안에서 그 색감들을 붙잡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일었다. 나는 이웃 형님의 따님이 미술을 전공한 것을 떠올렸다.

형님의 따님은 기꺼이 내 그림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블라인드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가로 230m, 세로 150m인 천을 주문하고 오방색의 아크릴 물감도 샀다. 붓은 작은 페인트 붓을 사용하기로 했다. 장마가 물러가고 쨍쨍한 햇살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일주일에 두 번씩 선생님이 사는 아파트를 향해 경사진 언덕을 올랐다.

다행히 민화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밑에서 삼분의 이쯤 되는 자리에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그리고 골짜기에 두 개의 폭포를 그렸다. 그 밑으로 화려한 물보라를 새겨 넣고 양쪽으로 구불구불한 소나무를 그렸다. 그리고 비어있는 하늘에 해와 달을 그려 넣었다. 한 하늘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일월오봉도였다.

그림이 워낙 컸으므로 거실에 펼쳐놓은 그림 위를 맨발로 들어가서 색칠을 했다. 연두와 녹색으로 기암괴석이 가득한 산봉우리를 칠하니 산이 우렁우렁 숨을 쉬기 시작했다. 폭포수는 흰 비단처럼 흘러내렸고 물보라는 만개한 흰 꽃처럼 한 방울 한 방울 피어났다. 붉은색으로 칠한 소나무 둥치는 하늘을 향해 용솟음치는 것처럼 생명력을 뿜어냈다.

그림 속에 들어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전혀 별개의 세상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은 마치 실재하는 또 다른 세상 같았다. 나는 그 그림 속에서 깊은숨을 쉬고 시원한 물소리를 들었다. 적송을 스치고 지나온 솔향기 배인 바람을 맞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끔 완전히 나를 잊었다.

산과 물과 소나무를 칠하고 나니 산봉우리 위가 텅 비어있었다. 문득 모든 것이 공간으로 보였다. 산도 물도 소나무도 텅 빈 곳에 시간과 인연이 입혀져 형상이 되고 색이 생긴 것 같았다. 산봉우리 위를 파란색으로 메우고 나니 그 공간은 하늘이 되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 오른편에는 붉은색의 해를, 왼편에는 흰색의 달을 그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원래부터 해와 달은 늘 한 하늘 위에 떠있었다는 것을.

일월오봉도는 주인공이 없는 그림이다. 해와 달, 산과 물과 소나무는 어느 것 하나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소외되어 있지도 않다. 한데 어우러져 한 세계를 이룬다. 동양사상의 근간이 되는 木, 火, 土, 金, 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생하는 이른바 오행상생도(五行相生圖)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냥 형상과 원색들로 가득한, 에너지가 팽창하는 한 덩어리의 공간으로 느껴졌다.

세필 작업을 마무리하고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아름다웠다.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그림 속에서 형상과 색들이 스스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비록 한정된 화폭에 그려져 있지만 그림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물보라가 튀고 솔바람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 해와 달은 서로 밀고 당기며 시간의 축을 돌려 그림을 완성했다. 자연계의 파라다이스였다.

다 그린 그림을 며칠 펼쳐놓은 채로 말렸다. 아크릴 물감이라 마르면 칠이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화폭의 재질이 나름 물감을 흡수했나 보았다. 선생님과 나는 박수를 치며 그림의 완성을 축하했다. 어쨌거나 내가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다니, 가슴이 벅찼다. 이제 한지로 둘둘 말아 집으로 가져가면 되었다.

선생님이 마지막 시간이니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찻물을 끓였다. 나는 그 틈을 노려 세필에 검은 물감을 찍어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떨어지는 폭포 옆, 아래로 노송이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 암벽 어디쯤 점 하나를 찍었다. 그 점이 그림 속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집이 되었다. 그곳에 앉아서 무심히 해와 달을 바라보는 나를 상상했다. 시간 저 너머의 집. 그곳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나의 집이었다.

차를 내오는 선생님의 등 뒤 창으로 뒷산이 보였다. 어느새 길고 지루한 여름이 가고 알록달록한 옅은 단풍이 들고 있었다.

<에세이스트 2021년 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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