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다녀오셨어요? 아무렇지 않게 이런 인사를 받으면 나는 참으로 난감해진다.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다. 피서는 좀 다녀오셨어요? 차라리 이렇게 묻는다면 몰라도 ‘휴가’라는 이름으로 평생 한 번도 어딜 다녀와 보질 못했다. 휴가를 가기 위해 계획을 짜본 적도 없고, 떠나기 전에 설레는 마음을 품어본 적도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주로 ‘선생’이었거나 글을 쓰는 ‘백수’였다. ‘선생’은 방학이 있으니 휴가를 신청할 일이 없고, ‘백수’에게는 나날의 삶이 늘 휴가여서 따로 휴가 갈 기회가 없었다.
요 몇 년 사이 휴가의 개념이 비로소 일상 속으로 들어와 굳어진 듯한다. 직장인이라면 여름철에 당연히 다녀와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고속도로 휴게소가 명절 때처럼 붐비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일상에서 단 며칠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들을 바라보며 내 딴에는 좀 안쓰러웠다. 자본은 대체로 평등하지 않으므로 휴가에도 계급적인 질서가 작동하는 건 아닐까 하는 기우도 생겨났다. 다들 들떠서 떠나는데,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남들은 값비싼 피서 용품을 은근히 과시하는데, 슬그머니 감추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나들이하기 좋은 봄이나 가을을 제쳐두고 왜 여름에만 떠나는 것일까? 눈 내리는 겨울에 산장에서 며칠 쉬겠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뼈 빠지게 일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휴가는 아직도 낯선 그 무엇이다.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