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청포도의 계절이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이육사 시인이 일찌감치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그 <청포도>의 배경을 두고 엇갈리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것 때문에 안동시와 포항시가 서로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육사는 1930년대 후반 결핵을 앓아 포항과 경주에서 요양을 한 적이 있다. 현재 해병 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포항 영일만 일대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포도 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작고한 소설가 손춘익 선생은 육사가 이 송도원 언덕에서 영일만을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는 풍경이 그때 시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 포항문인협회에서는 1999년에 ‘청포도 시비’를 세웠다. 이어서 2013년 포항 청림동에 ‘청포도 문학공원’을 조성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안동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위발 시인이다. 육사가 포항에서 요양한 적은 있지만 <청포도>의 배경지라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육사의 한자시어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를 예로 든다. 육사의 고향은 경북 안동시 도사면 원촌 마을이다. 이 ‘원촌(遠村)’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실제로 마을 이름을 ‘먼데’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먼데’를 교과서에서 ‘조국 광복’으로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한다.
필명 / 안도현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청첩장이 하나 도착했다. 신랑 이름이 안도현이었다. 어째 이런 일이! 나하고 이름이 똑같은 신랑은 시를 쓰는 후배였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는 나중에 하는 수 없이 필명을 안찬수로 바꾸었다. 선배를 잘못 둔 덕분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문학청년 시절에 만났던 몇 사람도 이름을 바꾸었다. 시인 이상백은 이산하가 되었고, 시인으로 등단했던 김정숙은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김형경이 되었다.
류시화 시인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 이름은 안재찬이었다. 창원의 경남대를 갔을 때 소설가 전경린은 없었다. 연구실 문패는 안애금이었다. 아예 성까지 바꿔 필명을 만든 경우는 30낸대의 이상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의 본명을 김해경이었다. 강하고 뻣센 느낌의 조동탁보다 조지훈이란 필명이 훨씬 훈훈하고 우리에게 친숙하다. 현역 작가 중에도 필명이 본명보다 더 알려진 문인이 적지 안다. 고음은 고은태였고, 심경림은 신응식이었고 황석영은 황수영이었고 황지우는 황재우였고, 박노해는 박기평이었다. 젊은 소설가 김사과의 본명은 김방실이었다.
백석은 어릴 적에 백기행이었다. 1933년 12월, 방응모 장학금을 받은 장학생들이 회보를 냈는데 그 표지에는 ‘백석(白奭)으로 실려 있다. 백석이 만주에서 ‘한얼생’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는 일부 주장이 있다. 이건 터무니없는 억측이다.
봄에 마늘종을 뽑아본 적이 있는가? 까딱 잘못하면 끊어지기 때문에 순식간에 적당한 힘을 가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마늘종이 올라온 뒤 보름 전도 되면 서둘러 뽑아줘야 한다. 규모가 큰 마늘밭에서는 노동력 절감을 위해 일일이 뽑는 것보다 아예 자른다고 한다. 그래야 땅속의 마늘 알이 탱탱하게 굵어지는 것이다. 마늘종을 뽑으면 뾱 하는 아주 특별한 소리가 난다. 뾱, 뾱, 뾱 하는 그 소리…. 햇볕이 따끈따끈해지는 5월의 마늘밭에서 듣는 소리…. 식물의 살과 살이 분리될 때 나는 그 소리가 가히 중독성이 있다. 어릴 적에 마늘종은 한 웅큼 뽑아오라는 심부름은 그래서 신이 났다. 사실 마늘종은 마늘의 꽃줄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개화를 꿈꾸며 마늘이 땅속에서 허공으로 애써 줄기를 밀어올린 것이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뽑히거나 잘리는 마늘한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된장 하나만 있어도 훌륭한 반찬이 되고 안주가 되는 게 마늘종 아닌가. 아삭아삭하고 연한 이것은 새큼하게 장아찌를 담가도 좋고, 고추장으로 무쳐도 좋고, 멸치나 마른 새우하고 볶아도 좋다. 나는 콩가루를 묻혀 쪄낸 마늘종을 특히 좋아한다. 비만과 고지혈증,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데 탁월한 요과가 있다니 오늘 장바구니에는 마늘종 한 단 담아볼 일이다. 경남 남해군이 사시사철 푸른 것은 남쪽 끝이어서가 아니다. 드넓은 마늘밭 때문이다. 거기 지금쯤 뾱, 뾱, 마늘종 뽑는 소리가 새소리처럼 치렁치렁 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