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주린이’가 됐다
최숙희
친정아버지가 30년 은행 생활을 접고 증권회사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지만 나는 주식에 대해 무지했다. 아버지가 증권을 본격적으로 하신 건 증권사를 그만두고 개인회사로 옮기고부터다. 증권에 대한 믿음은 거의 맹목적으로 은퇴 후에도 경제신문을 몇 가지씩 챙겨보고 매일 아침 증권사의 객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하셨다. 디지털 세대가 아닌 노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신 거다. 오래전 퇴직금을 엄마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몽땅 주식에 투자했을 때 부모님은 크게 다투셨고 엄마는 증권투자를 도박으로 치부했다.
은행원의 딸로 수십 년을 살아온 내게 유일한 재테크는 ‘저축’이었다. 얼마를 벌든지 일부를 떼어 적금을 들어 종잣돈을 마련하고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생각이었다. 코로나 이후 돈이 풀려 주식투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차고 넘쳤다. 은행 금리가 너무 낮으니 그냥 은행에 돈을 넣는 것은 바보가 하는 짓 같았다.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나만 고립되거나 놓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작용했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뾰족한 해결책도 없다.
후배가 코로나 백신을 만든 제약사인 ‘모더나’주식에 몰빵해서 큰돈을 벌고 세금을 많이 냈다는 얘기를 들으니, 주식투자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우선 전화기로 증권계좌를 열었다. 수영할 줄도 모르면서 바닷속에 뛰어들 수는 없으니 아쉬운 대로 유튜브, 트위터, 브이로그 등 다양한 SNS를 통해 주식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렵고 이해가 안 됐다. 몇 가지 영상을 집중해서 보고 나서야 조금 감이 잡혔다. 아침잠이 많은 나도 주식시장이 열리는 새벽 6시 30분이 되면 눈이 번쩍 떠졌다. 노안이 시작된 침침한 시력으로 명멸하는 주가를 살펴본다.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아마존 주식을 조금씩 샀다. 나도 ‘주린이(주식+어린이, 초보 주식투자자)’가 된 것이다.
Beginner’s luck(초심자에게 따른다는 재수)이었을까. 처음에는 은행이자보다 조금만 더 수익이 나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장이 좋아서인지 며칠 만에 은행이자 몇 배의 수익이 났다. 어쩌다 우연히 장이 좋았을 뿐인데, 그것을 실력으로 착각했다. ‘워런 버핏이 별건가, 내가 바로 투자의 귀재였나’ 하며 남편에게도 주식으로 대박 나서 곧 은퇴하자고 큰소리를 쳤다.
세상이 나한테 너무 우호적이라 생각했는데,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초록색으로 나를 들뜨게 하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은행도 보장해주는 원금이 증발하기 시작하니 겁이 났다. 물타기를 해서 평단가를 낮춰야 하나, 손해를 보고라도 팔아야 하나, 조정이 끝나면 오를까, 하루에도 열 번 넘게 주식 창을 들여다보고, 주식 공부하며 보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무슨 허튼짓을 한 것인지 허탈했다.
지루한 조정이 끝나고 주가는 다시 올랐으나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조급함에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는 정보에 혹해서 투자한 몇몇 스팩주로 큰 손해를 보았다. 팔기 전까지 손해는 아니라지만 속이 쓰리다.
결과적으로 주식을 시작하고 단조롭던 생활에 활기가 생기고 부부간에 대화도 많아졌다.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니 젊어지는 기분이 든다. 100%는 없겠지만 안전한 회사에 투자하고 인내로 기다리면 결국 과실을 따 먹을 날이 오겠지. 이제 남은 일은 안전하며 수익을 줄 수 있는 회사를 찾는 제일 어려운 일만 남았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21/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