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기 위해 훈육하다

(Wall-EDoo-B의 두 번째 이야기)

 

 

 

입양된 두비는 가족이 되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다. 대소변을 아무 데나 배설해 놓아 우리 가족을 당황케 했다. 용변을 보게 하기 위해 밖에 데리고 나가면 주위에 관심이 많아 통제가 안 되므로 기저귀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다른 그릇에 월리와 따로 주는데도 두비는 성급하게 먹어 치우고 월리의 밥그릇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것을 싫어할 만도 한데 월리는 양보하며 비켜준다. 두비는 형 덕분에 두 그릇을 먹는 셈이지만 항상 배가 고픈 듯 바닥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먹었다. 휴지, 플라스틱 심지어는 자기 기저귀까지 입에 넣었다. 뺏으려 하면 으르렁거리며 내 손을 물기도 했다. 식사 시간에도 의자 위에서 틈을 노리다 식탁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우리는 긴장을 놓지 못했다. 먹는 것 앞에서 무분별한 본능이 발동되는 것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어렸을 때 내가 잘못하면 아버지는 회초리를 드셨다. 나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 위한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기에 울면서 매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적절한 훈육이 필요한 것처럼 두비를 한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씩 훈련을 시작했다. 두비는 밖에 나가면 다른 곳으로 달아나기가 일쑤였지만 월리와 함께 배변을 시키면 냄새를 맡은 후 따라 했다. 반복해서 시도하여 기본 습관으로 몸에 익히게 했다. 그런데도 어느 사이에 실례를 범한 녀석의 무례함에 우리는 인내가 필요했다. 계속적이고 일관된 훈련으로 실외에서 용변을 봐야 함을 깨닫기 시작했고, 밖으로 나가지 못할 때는 깔아놓은 기저귀 위에 배설하여 칭찬을 받았다. 부모님이 나의 잘못을 참아주고 타이르는 말씀을 반복하여 내가 깨닫고 변하도록 하셨던 것같이.

 

두비는 영리하여 재빠르게 적응했다. 형의 분위기를 맞추며 친해지려 노력했다. 침대에 먼저 들어가 월리에게 접근하여 몸을 비비면 형은 슬그머니 피해 나갔다. 자기 물건을 만지는 동생을 착한 형은 물러나서 쳐다보았다. 혼자 있던 월리에게도 낯선 방문객을 동생으로 맞이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제 둘은 서로 얼굴을 대고 장난하며 아우는 형과의 의리를 지키는 듯 '형님 먼저!' 위계질서를 지킨다. 물건을 양보하며 공유하고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비를 입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오 남매는 가끔 다투며 좋은 것을 가지기 위해 경쟁도 했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신뢰를 쌓아가며 우애를 나누듯이.

 

둘에게 공평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 평등한 대우 속에서 믿음이 싹트기 때문이다. 오른쪽엔 월리, 왼쪽엔 두비. 양손으로 같은 음식을 동시에 준다. 처음 두비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설사를 했던 이유는 먹어야 산다는 의식에서 나온 심리 현상임을 깨달았다. 충분히 공급되는 먹이가 있기에 경쟁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내 부모님은 다섯 자녀 즉 첫째 애에게는 맏이의 인내심을, 둘째는 도전 정신을, 막내는 귀여운 사교성 등을 개성으로 여기고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니.'라며 어느 한 자녀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키워주셨다. 이런 부모님의 동등한 인정을 받으며 자란 형제가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과 같으리라.

 

원하는 물건을 뺏기지 않으려고 '주인을 물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자라온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돌봐주는 주인이 없이 길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경쟁을 겪었을 테니까. 이제는 다른 과자를 주면 물고 있던 나쁜 물건을 포기하며 내려놓는 달라진 행동을 본다. "다운! 앉으세요!" 하면 자리에 앉아 얌전히 먹을 것을 기다린다. 마치 순한 양같이 변했음을. 자라온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교육의 출발점이 되는 것처럼.

 

두 강아지에게는 주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행동이 교정되면 상으로 과자를 주며 칭찬한다. 놀라운 것은 야단치는 억양으로 말하면 반항하고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딸이 월리를 안으면 두비는 질투를 하는 듯 내 무릎으로 와 앉는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작은 몸을 내 다리에 파묻고 금세 잠이 든다. 사랑을 받기 원하는 모습에 쓰다듬어 주면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나도 부모님의 애정 속에서 바른 행동으로 교정되어 성장하지 않았던가.

 

한 가족이 된 두비 덕분에 6개월 밖에 못 산다던 월리는 2년이 지났지만 건강하게 지낸다. 달라지는 말썽꾸러기 두비를 보며 과거의 내 모습을 비춰보니 그와 지내는 하루하루가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