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책 안도현

한 달에 공으로 받아보는 책이 100권쯤 되는 것 같다사인이 들어간 시집이나 소설집도 있고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신간도 있다저자의 노력과 정성에다 인쇄 비용과 우편요금까지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다그럼에도 한 페이지 열어보지 못하고 쌓아두고 마는 책도 있다.

예전에는 새로 발간된 책을 보내면 답장을 보내주던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다. 1930년대 중반 전북 부안에 살던 신석정은 시집 사슴을 받고 백석에게 <수선화>라는 시를 써 보내 감사를 표시했다생전에 조병화 시인은 엽서에다 자신의 상징인 파이프를 그려 넣어 잘 받았다는 표시를 해주셨고김규동 시인은 한지에다 그림을 그리고 시 한 구절을 적어 보내주시기도 했다아흔을 눈앞에 둔 김종길 선생님은 시집을 읽은 소감을 몇 말씀이라도 적어 보내면서 격려를 해주신다.

요즘 젊은 시인이나 작가들은 그런 예스런 답장을 하지 않는다나도 뻔뻔하기는 마찬가지다책 발송은 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자신의 책을 출판사나 서점에서 사서받을 사람의 최근 주소를 일일이 찾아 써야 하고봉투를 붙여야 하고적잖은 무게의 책을 들고 우체국으로 가야하고그리고 우표를 붙여야 한다출간은 경사지만 발송은 노역이다.

어떤 작가에게 왜 신간을 보내주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말한 사람이 있었다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그 작가가 말했다이번에 너희 회사에 새 차 나왔다는데 왜 나한테는 한 대 안 보내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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