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2
공순해
만물의 출발은 먼지에서 비롯된다. 이 추정이 과연 참일까? 어느 날 청소하다 문득 매달리게 된 이 명제에 잠시 주춤했다. 독창적인 내 발견일 린 없고 필경 체험으로 유추된 명제거나 독서를 통해 얻은 가설일 터였다. 가늘고 보드라운 티끌이 모여 사물 또는 생물체를 형성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느닷없이 떠오른 생각에 확신을 불어넣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후 짬짬이 머릿속에서 이 명제를 꺼내 생각을 거듭하게 됐다.
처음엔 좀 막연한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티끌이니 존재하는 사물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일상생활과 떼어 놓을 수 없으니 존재 아닌 존재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아예 먼지에게 존재를 부여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기 위해 먼지 뒤에 올 수 있는 형용사나 동사를 이어 보기로 했다. 흔히 먼지 뒤에 오는 형용사로는 ‘시커멓다’ ‘뿌옇다’ 등이 올 수 있다. 그러면 ‘시커멓다’와 ‘뿌옇다’의 반대 개념은 무엇일까. 아마 ‘하얗다’ ‘해맑다’ 등일 것이다. 이미지로 보자면 ‘시커멓다’와 뿌옇다’는 어둡고, ‘하얗다’와 ‘해맑다’는 밝다. 먼지가 체언으로 쓰일 때 용언으로 따라오는 말들이 어둡다는 건 이렇게 유추됐다. 그렇다면 어둡다란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을 의미하는 한 먼지는 부정적인 존재일까?
생명 있는 존재들은 숨을 쉬지 않고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숨을 들이쉴 때 매 순간 숨 한 번에 15만 개 이상 100만 개의 먼지 입자를 들이마신다는 과학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흙, 모래, 암석, 금속, 식물, 등, 고형물이 파쇄돼 생긴 고형 미립자인 먼지는 대기 중에 부유하며 분진을 형성해 인체 기관에 악영향을 미친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거나 진폐증을 가져와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심지어 달콤한 꿈을 꾸게 하는 코코아나 설탕의 가루도 분진이 되면 폐에 치명적 존재가 되고 만다. 먼지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토록 쉽게 증명된다. 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만으로는 만물의 출발을 이룰 수 없다. 생명의 밝은 이미지를 이끌어 올 수 없으므로.
여기서 생각이 막혀 곤곤해 하고 있을 때 만난 것이 한나 홈스의 <먼지>였다. 메인주의 환경 전문 작가인 그녀는 이 책에서 지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의 커다란 비밀을 가진 먼지는 우주에서 날아온 자연의 전령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중력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이단자인 먼지는 이것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 생명이 존재하고, 이윽고 그 생명은 먼지로 다시 돌아가기에 생명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명을 잉태시키고 함께 동거하지만, 살인자로 변모하기도 하는 점을 예리하게 갈파한 것이다. 저자의 이런 명쾌한 전개는 먼지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민하던 내 부담을 크게 덜어 주었다.
생명을 잉태시키기도 하고 살상할 수도 있는 존재라면 먼지가 만물의 출발이라는 판단은 전혀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니었다는 점이 입증된 셈 아닌가. 그러나 만물의 출발뿐 아니라 만물의 귀결이라고 말해도 무리는 아닌 먼지, 그리고 부정과 긍정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존재 먼지, 라고까지 생각을 정리해 놓는 순간 나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만들어내는 생활 먼지, 생산과 경제 활동을 하며 만들어내는 산업 먼지, 그리고 자연 속에 떠돌거나 우주에서 내려오는 먼지 등 언제 어디서나 숨 쉬고 살아가는 동안은 함께 동거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하찮은 존재는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로 ‘먼지’ 취급을 할 수 없는 존재였구나. 그러니 이제 앞으론 먼지를 엄숙하게 바라보아야 할까? 돌맹이에도 존재로서의 꿈이 있다면 먼지도 꿈을 꿀 수 있다고 인정해 주어야 할까?
하지만 먼지는 먼지일 뿐이다. 먼지에게 좀 덜 미안해지고 싶으면 아주 가끔 만물의 출발과 귀결은 먼지라고 겸손하게 기억해 주기만 하면 되겠고… 실소와 함께 상상을 접으며 자신을 비롯한 인간의 오만하고도 이기적인 특성에 대해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선생님의 깊이로 더해진 먼지의 존재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먼지는 먼지일 뿐이니 사람도 사람일 뿐이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 관계되어 있다는 것까지.
유추해내고 밝혀내고 인정해주는 존재가 있는 한, 그 어떤 사소한 존재라도 그 의미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두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