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 ‘Estate Sale’ 팻말이 있는 집을 보았다. 사방에서 태평양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집의 내부는 얼마나 근사할까,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다. 전망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오래된 집이라 낮은 천장과 복잡한 구조가 내 취향은 아니다. 간신히 집을 산다 해도 높은 재산세가 부담이니 신 포도를 따 먹지 못하는 여우의 심정이었을까.
‘에스테이트 세일’이란 그 집에 살던 사람이 죽고 유품을 판매하는 일이다. 일반인에게 집을 개방해서 가능한 한 빨리 집안의 모든 물건을 없애고 집을 팔려고 할 때 이용하는 방법이라 들었다. 후손들이 업체에 의뢰해 그들에게 불필요한 모든 물건을 처분한다. 주인 떠난 옷장의 옷, 구두, 가방, 주방용품, 책, 그림 등이 헐값의 가격표를 달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서글프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우리 정서로는 모르는 사람, 특히 죽은 사람의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광고를 보고 온 차들이 드라이브웨이에 벌써 가득하다. 누군가의 불필요한 물건이 다른 이의 보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맞나보다.
우리 가게의 단골 몇 명이 코로나로 사망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죽음을 코앞에 맞닥뜨린 기분이다. 갑자기 이슬처럼 허망하게 사라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느새 60세가 내일모레다. 세월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모래와 같이 훌쩍 흘러갔다. 귀중품을 제외하고 내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내 아이들이 과연 환영할까. 결국은 이렇게 에스테이트세일로 나오겠지.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만만한 옷 정리부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등산복을 제외하곤 옷 사는 일이 현저히 줄었지만, 옷장에 숨 쉴 공간을 주니 코로나 직전에 사고 한 번도 못 입은 새 옷이 눈에 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다. 옷 정리 후 구두, 가방, 그릇 등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것을 없앴다. 하지만 글 쓸 때 나중에 내 글에 써먹어야지 하고 메모해둔 노트와 책들, 추억 담긴 편지 묶음과 사진들은 정리가 어렵다. 소질이 없으니 하기도 싫은 정리정돈은 내 아킬레스건이다.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읽으며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는 그녀의 충고를 따르고 싶지만 설레는 물건만 남기는 일이 과연 나한테 가능할까. 적게 소유하며 중요한 것에 더욱 집중하면 더욱 밀도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데. 살림살이만 정리할 게 아니라 마음속에 쌓인 욕심, 미련, 집착을 가지치기해야 하는데.
페이스북 친구 인연으로 시작하여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한 시간씩 운전하고 우리 동네까지 와서 바닷가나 공원을 산책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고마운 친구다. 한 번은 그녀가 같이 하이킹하는 친구들도 데려와서 좋은 사람들도 사귀게 되었다. 친구의 친구로부터 건강밥상 유튜브도 소개받고 성경 말씀도 주기적으로 카톡으로 받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며 소유한 물건을 줄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실망으로 불필요한 만남도 자제하자 마음먹었지만 이렇게 좋은 풍성한 만남을 경험하니 미니멀리즘에서 사람 만남은 제외해야 할듯싶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5/14/2021
잘 읽었어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기억에 남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