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이 아는 비밀”
김수영
동물과 사람 사이에 비밀이 있다면 우리는 무슨 비밀일까 하고 호기심이 생긴다.
올해 소해를 맞이하여 소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큰 눈망울을 굴리면서 주인의 명령에 늘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소를 보면 희생의 대명사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두르지 않고 꾸준하고 되새김의 반추작용으로 여유로움이 있고, 유유자적하면서 초연하다.
나는 개도 좋아하고 말도 좋아하고 소도 좋아한다. 평생 주인을 위하여 일하다가 죽은 다음에도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는 소는 참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소를 주인공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 소리’가 있다. 주인공 할아버지와 소와의 40년간의 끈끈한 정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인데. 이 소는 40년을 할아버지와 살았다.
믿을 수 없는 기적인데, 할아버지가 자식처럼 아끼고 돌 보아준 사랑 때문에 그토록 장수 할 수가 있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주인은 늙어 잘 듣지 못했으나 소의 목에 걸어 둔 워낭의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소와 소통을 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허구가 아닌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였다. 소가 늙어 죽게 되자 할아버지도 일 년 안에 소를 따라 죽고 말았다. 소가 없는 삶은 삶의 의욕과 희망을 잃게 되어 곧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동물을 주제로 다룬 미국의 단편소설이 있다. Quentin James Reynolds 가 쓴 “둘만이 아는 비밀(A Secret for Two)” 이다.
Q.J. Reynolds는 1902년 4월 11일에 태어나 1965년 3월 17일 사망했다. 미국의 신문 잡지 기자였고 특히 세계 이차대전 때 종군기자로 일했다. 그가 쓴 단편 소설 “둘만이 아는 비밀(A Secret for Two)” - 이 단편 소설도 참 감동을 준다. 우유 배달부와 말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이름은 피에르 두핀이고 말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불렀다. 근 삼십 년을 하루 같이 일하는 주인 피에르와 함께 요셉은 마차를 끌면서 피에르가 늘 다니는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확하게 우유를 배달했다.
요셉은 온순하고 충성스러운 말이었다. 성 요셉의 이름을 따서 말 이름을 요셉이라 지어주었다. 배달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안 돼 요셉은 배달할 40가정의 집을 정확히 알아내었다. 피에르가 한 것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네 블록을 배달하다 보니 요셉은 정확하게 고객들의 집을 기억했다.
새벽 5시에 피에르가 출근하면, 말에게 늘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안녕 요셉”. 요셉은 배달할 집에 도착하면 발걸음 멈추고 문 앞에 우유를 정확하게 배달했다. 피에르는 문맹이었기 때문에 쪽지에 써서 주문을 받지 않고 늘 머릿속에 외워두었다가 주문을 받아 배달했다. 삼십 년을 배달하는 동안 고객들로부터 한 번도 불평을 들어보지 못했다.
삼십 년을 하루 같이 일하다 보니 피에르는 늙어서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우유 회사 사장이 연금을 줄 테니 은퇴를 종용해도 요셉이 살아있는 한 은퇴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느 날 춥고 매우 어두운 겨울 새벽에 피에르가 출근했을 때 감독관이 피에르에게 “오늘 아침에 요셉이 일어나지 않아 가 보니 그는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말은 25세였고 사람 나이의 75세에 해당한다고 했다. “나도 75세인데 더 이상 요셉을 볼 수 없게 되었구나.” “마구간에 평화롭게 누워있으니 가 보라”고 감독관이 말했다. 피에르는 한 발짝 다가가다가 “아니, 아니 당신은 알지 못해, 감독님.” 감독관은 피에르 어깨를 두드리며, “요셉처럼 좋은 말을 구할 테니, 한 달이면 훈련 잘 받아서 요셉처럼 배달 잘하게 될 거예요.”
피에르의 눈을 바라보던 감독관은 멈칫했다. 오랫동안 피에르는 챙이 달린 모자를 눌러 쓰고 다녀서 눈을 잘 볼 수가 없었다. 몹시 바람이 부는 추운 아침이었다. 바람이 모자를 날려 버리자, 감독관 쟄은 피에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죽은 생명 없는 눈동자였다. 그 눈에는 피에르의 영혼과 마음속에 있는 슬픔이 거울처럼 비쳤다. 그 눈동자는 그의 마음과 영혼이 죽은 것처럼 보였다.
감독관은 오늘은 하루 쉬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는 거리로 절뚝거리면서 가고 있었다. 가까이 그의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두 뺨 위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피에르는 구석을 돌아 거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빨리 달리던 엄청나게 큰 트럭의 운전기사가 경적을 울리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브레이크 밟는 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러나 피에르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5분 후에 구급차가 도착하여 그 운전기사가 말했다. “그는 죽었습니다. 즉사했습니다.”
트럭 운전기사는 말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어요. 바로 트럭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어요. 마치 시각 장애자처럼 그대로 달려왔어요.” 구급차 운전기사가 구부려 피에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시각 장애자였다고요?” 물론 그는 시력 장애자였습니다. 피에르는 5년 동안 시작 장애자였어요.
그는 감독관을 향하여, “그가 당신을 위해 일했다고요? 그가 시각 장애자란 것을 몰랐나요?”
“아뇨….. 아뇨….” 감독관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아무도 몰랐어요. 오직 한 분은 알고 있었는데….그가 이름 지어 준 요셉 친구만 알고 있었어요. 내가 생각건대, 그것은 비밀이었습니다.
요셉과 피에르 사이에.”
충성스러웠던 말 요셉은 주인 피에르가 시각 장애자란 것을 알고 죽도록 주인을 위해 충성했고 주인 대신 척척 알아서 배달한 영리한 말이었다. 둘만 알고 있었던 비밀이었다.
둘만 알고 있던 이 기막힌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자 말 요셉의 충성심에 사람들은 감탄했고 앞을 못 보는 주인 피에르의 고통을 들어 준 말의 영리함에 또 한 번 놀랐다.
개와 사람, 소와 사람, 말과 사람과의 교감은 하나님이 주신 보이지 않는 텔레파시(telepathy)이다. 실 가는데 바늘 가듯 둘은 손발이 척척 맞는 앙상블이었다. 중앙일보 문예마당/2021년 5월 28일
정말 감동적인 동물과의 교감이네요.
사람보다 훨씬 더 의리있고 헌신적인 동물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반성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