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의 비밀

                                                                                                                           이희숙

 

 

  구름이 벗겨지며 산의 형체가 드러난다. 구름이 비상하는 하얀 움직임을 바라본다. 신비에 싸인 산마루를 오르는 설렘에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몇 년 전 우리 부부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올 만큼 심한 건강 악화를 겪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건강이 회복되자 우리는 스스로에게 보상이라도 주려는 듯 선교 여행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남쪽으로 벋은 안데스산맥에 발을 디뎠다. 한국 선교사가 페루의 수도인 리마, 쿠스코와 아렛끼바에서 사역하는 현장을 둘러보며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수도 리마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잉카제국의 수도이며 문화의 중심지였던 쿠스코에 도착했다. 시가지는 스페인 양식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머리 가까이에서 쏟아지는 별빛과 광장의 야경에 취해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아구아스깔리엔데스에 도착했다. 역사의 베일 속에 숨겨진 산속에서 호기심으로 뒤척이며 밤을 지새웠다. 구름으로 덮인 유리창 가에서 조반을 먹고 마추픽추 가까이 접근했다. 버스로 구불구불 가파른 경사를 돌며 정상을 향했다. 우리를 휘감고 있는 구름 사이에서 한 발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며 마음을 진정시키자 푸른 하늘이 모습을 내밀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산에 둘러싸인 잉카 시가 보이기 시작하니 퍼즐이 맞추어지는 듯했다. "우와!" 드러나는 고고한 산의 자태에 탄성을 자아냈다. 비경을 품은 계곡이 파노라마 같이 펼쳐졌다.

 

  잉카제국은 불가사의한 곳이다. 그곳은 15세기에 문명의 꽃을 피웠고 스페인에 의해 멸망하여 인류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곳으로 1911년 예일 대학교수 Hiram Bingham's에 의해 발견되었다. 마추픽추 Machu Picchu'늙은 봉우리, 잃어버린 공중도시'라는 뜻을 가졌고 해발 2,430m 산맥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아래로 우루밤바강이 흐르며 옥토를 형성해 '신성한 계곡'이라 불렸다. 북쪽의 마추픽추와 남쪽의 와이나픽추 Wayna Picchu 사이에 요새 도시가 형성되었다. 와이나픽추는 우리 눈앞에 우뚝 서 멋을 더해주었다.

 

    입구에서 현지인 가이드를 만나 안내를 받았다. 잉카제국에 입성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The City Gate'를 지났다. 유적의 면적은 13제곱 km이며 성곽은 좁은 돌계단이 감싸 있었다, 돌계단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틈 없이 돌을 쌓은 정교한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체력이 약한 우리는 준비해 간 두 스틱에 의지해 수많은 돌계단을 오르내렸다. 돌로 지어진 건물은 약 200채 정도였고 귀족, 농민, 평민이라는 세 계급 각각을 위한 신전, 농작지, 마을로 구성되었다. 도로망을 건설하여 일정한 원칙에 따라 도시를 만든 고대 계획도시로서 정치와 사회적 구조가 체계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절대군주제, 계층 분화가 잘 이루어져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음도 상기 시켜 주었다.

 

   높은 위치에 태양을 숭배하는 신전(The Temple of the Sun)과 해 시계가 있었다. 제물을 바쳤던 116톤이나 되는 제단의 큰 돌을 산꼭대기로 운반한 기술에 감탄했다. 제물로 순결한 아마존의 처녀를 바쳤고, 요사이 축제 때에는 라마가 제물이 된다고 했다. '3'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한 예로 신전에 뚫린 세 개의 창문을 보았다. 세 위치에 따라 하늘엔 독수리, 땅엔 푸마, 지하엔 뱀을 숭배했고 날개를 가진 독수리 모양의 신전이 있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잉카제국의 신전과 문화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돌아보았다. 발달한 문명 속에서 신에 의지했던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인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축제와 경기나 게임을 했던 광장이 넓은 공간에 자리 잡았고, 2층으로 된 건물도 있었다. 계단식 농장, 물을 공급하는 수로와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의 모습을 보며 문명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고운 색채의 수공예 의상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주민과 여유롭게 배회하는 라마들의 모습을 보며 옛 제국 속을 거니는 듯했다. 패망의 정확한 원인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수백 년 동안 세속과 격리되어 비밀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자연과 시간 속으로 묻힌 문명의 자취에 아쉬움을 남기며 발길을 돌렸다.

 

  기차를 타고 눈 덮인 안데스산맥 투명한 천혜 속 깊숙이 들어간다. 유리 천장과 창을 통해 웅장한 산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만년설 덮인 산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지금도 기록되고 있는 의미를 읽는다. 나도 역사의 한 조각이 되길 바라며 퍼즐을 맞추어 간다.

 

   사라진 유적지 속에 내 흔적을 남긴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황홀한 감사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