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 끽연(喫煙)을 / 목성균
나는 근 30년 간 위장병을 지니고 산다. 그래서 아내는 내 위가 더 나빠진 것 같다며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지 번개같이 복날 개 끌고 가듯 사정없이 나를 병원으로 끌고 갔다.
봄 들면서 내 위가 더 나빠진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침 아내는 나를 굶겨 가지고 용하다는 〈박 내과〉에 끌고 가서 내시경 검사와 조직검사 등 위장에 대한 종합 진찰을 받게 했다.
그리고 몇 일 후, '혹시나-?' 싶어서 무거운 마음으로 진찰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다.
"신경성 만성 위염입니다."
의사의 말이 '혹시나-?'하는 걱정을 깨끗이 씻어 버린 아내는 주름진 안면을 혼담 들어온 노처녀처럼 활짝 펴고 기뻐했다. 의사는 진찰 결과를 알려 주면서 내게 주의사항을 시달했다.
"담배 피우십니까?"
"네-. 조금---."
"금연하십시오. 위염에는 담배가 제일 해롭습니다. 니코틴이 위 점막을 자극해서 위액을 분비시키는 자율신경을 실조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액이 분비돼야 할 때 안되고 안 돼야 할 때 분비돼서 위벽에 손상을 줍니다. 금연을 못하면 절대로 건강한 위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나는 자격 운운하며 초등학생 다그치듯 하는 의사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입을 당나발처럼 내밀고 묵비권을 행사하는데, 아내가 대신 나서서-,
"네, 선생님, 금연하고 말고요."
마치 자기가 금연할 것처럼 의지를 천명했다.
말투로 보아서 의사는 내 위작병력으로 미루어 의지력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짐작을 한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내 인격을 얕잡아 보고 말을 막하는 것이라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병약하면 눈치만 느는 모양이다.
사실 30여 년을 위장병으로 고생한 사람의 황폐한 얼굴을 보고 호감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30년 씩 위장병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 세월이면 병을 고쳤든지 죽었든지 양단간에 결판을 냈어야 한다.
의사가 내게 금연을 지시한 것은 의학적인 처방이라기보다 극기(克己)하라는 인간적 충고인지 모른다. 그러나 앉은뱅이가 이수 몰라서 길 못 가는 게 아니다. 의사의 말이 아니라도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담뱃갑에도 써 있지 않은가.
〈경고 :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습니다.〉
매상을 올려야할 제조업자가 가급적이면 사 피우지 말라고 자기 상품의 위험성을 경고한 말이다. 의사의 말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나는 30여 년 동안 담배를 끊지 못하고 흡연을 계속 해왔다.
아무튼 의사의 지시에 의해서 극기가 시작되고 아내는 게슈타포 같이 나의 금연 위반 여부를 감시하기 시작했지만 나의 금연은 또 작심삼일로 끝났다. 이미 나는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내 못생긴 의지력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상심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아내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단서를 잡히고 말았다. 도둑담배를 피우고 증거인멸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미처 내 몸에 남은 담배 냄새에 유의치 못한 나머지 셰퍼드 같은 아내의 후각에 의해서 끽연 사실을 적발 당하고 만 것이다.
아내는 내 보잘것없는 의지를 개탄했다.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를 느끼고 방바닥에다 담뱃갑을 거세게 팽개친 후, 결연한 몸짓으로 아내 앞에서 돌아섰다. 아내는 발끈 하는 내 성미에 연민을 느낀 나머지 분발심으로 받아드리는 듯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내 모교는 연초제조창과 가시철망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여름날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공부를 하면 엽연초 재건조 냄새가 교실에 하나가득 찼다. 향료와 보습용 꿀물로 배합해서 찌는 엽연초 재건조 냄새는, 그렇게 향긋할 수가 없었다. 그 냄새를 맡으면 몹시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내 고등학교 동창생들은 재학시절에 담배를 피우는 애들이 꽤 많았다. 쉬는 시간이면 연초제조창 철조망에 붙어 서서 여공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누님, 시가렛 기브 미."하면 나이든 여공들은 "학생이 무슨 담배야 안 돼." 하며 누님다운 눈초리로 쏘아보았으나, 대개는 작업복인 예쁜 앞치마 주머니에게 궐련을 꺼내 가지고 철조망 너머로 던져 주었다.
도둑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은 담배를 던져 줄 여공을 잘 알아보았다. 담배를 던져 줄 여공들은 "누님-."하면 벌서 가슴이 뛰는지 얼굴을 바로 들지 못했다. 그런 여공들로부터 우리는 담배를 조달 받아서 도둑담배를 피웠다.
사실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라기보다 경비아저씨의 눈을 피해서 수줍게 담배를 던져 주던 여공의 그 아름다운 모험심에 반해서, 학생들은 연초제조창 철조망에 한사코 매달려 자랑스럽게 니코틴 중독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가끔 담배를 피우며 생각한다. 나를 니코틴 중독자로 만든 얼굴이 조롱박처럼 조그맣고 하얗던 여공을---.
요즈음 우리 집에 장모님이 와 계신다. 구십이 불원한 연세에 지극한 애연가 시다.
아내한테 끽연을 들킨 날 저녁때,
"사위, 옥상 평상에 가 보세, 노을도 곱고 아주 시원해---."
"---?---, 네."
나는 장모님을 따라서 옥상에 올라갔다. 장모님과 평상에 마주앉았다. 장모님 말씀대로 도시의 고층 아파트 너머로 노을이 곱게 물들어 있고, 초여름 저녁바람이 일어서 상쾌했다. 장모님은 치마를 걷어올리고 당신이 손수 달아 놓은 속곳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시더니 내게 한가치를 빼 주시고 당신도 한 가치 빼 무시는 것이었다.
"이럴 때, 담배 생각나지 왜, 위에 나쁘다니 다 피우지 말고 반만 피워-."
구겨진 '그로리아' 담뱃갑, 아침나절 내가 아내 앞에 힘껏 내동댕이친 그 담뱃갑이 분명했다. 도둑담배를 피우고 마누라한테 혼나는 사위가 마음에 걸리셨던가 보다. 장모님과 나는 노을이 지고 어두워 질 때까지 옥상의 평상에 마주앉아서 이런 저런 야기를 했다. 담배는 장모님 말씀대로 딱 반 가치만 피웠다. 그 이상 더 피우면 장모님의 마음을 불편케 하는 배은망덕한 짓이기 때문에 강렬한 끽연 유혹을 참아 냈다. 우유부단한 내가 모처럼 제법 의지대로 나를 바로잡았다.
이 아름다운 황혼녘에 〈장모님과의 끽연〉이 내 위에 해롭다 하더라도 사실 날이 멀지 않은 장모님을 위해서 계속하고 싶었다. 분명 끽연을 위해서 나를 속이는 구실이 아니다.
나는 장모님이 계시는 보름동안 비가 올 때를 빼고는 매일 저녁 옥상의 평상에서 장모님과 아내 몰래 만났다. 그리고 담배 반 가치를 피우면서 장모님의 이야기를 들어 드렸다. 노경에 들어서 지금까지 누구와 긴 야기를 해 보시지 못한 장모님은 나이든 사위와 지난 세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몹시 기뻐하시는 눈치였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위 된 도리를 다하고 싶어서 이틀에 궐련 한 갑씩을 아내 몰래 장모님께 사 드렸다. 그리고 저녁 때 한 가치를 얻어서 반만 피웠다.
〈장모님과 끽연〉을 아무리 게슈타포 같은 아내라도 알아낼 재간이 없다. 담뱃갑은 장모님이 속곳 주머니에 보관하고 나는 석양 무렵에 한 가치씩 얻어 피울 뿐이므로 금연 위반은 증거가 없는 완전범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속인다는 양심의 가책은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의 충고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약한 내 의지에 자괴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장모님과 하루 딱 반 가치씩의 끽연은 장모님에 대한 효도의 일환이지 끽연 습관을 못 버려서가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아내도 나의 〈장모님과 끽연〉을 눈치 챘으면서도 자기 어머니에 대한 내 마음이 고마워서 의사 앞에서 천명한 자기 직무를 유기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