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바 안녕
드바가 죽었다.
아침에 양순이가 달걀을 꺼내러 닭장에 들어갔더니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드바가 횃대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싸한 느낌이 들어 얘, 하며 툭 쳤더니 풀썩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새벽에 살찌니가 안절부절못하며 온 뜰을 헤집고 다닐 때부터 지난밤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기미가 있었다. 며칠 전에 망 안에 가둬 두었던 병아리 세 마리가 한꺼번에 없어졌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길냥이들 소행이 분명한데 동촌 댁은 애꿎은 살찌니를 잡았다.
“시끄럽다, 이 노무 고양이. 지키라는 병아리는 안 지키고.”
그날 싸리비로 흠씬 두들겨 맞은 살찌니는 무척 억울해 보였다. 제 아무리
홈그라운드 어드밴티지를 가진 살찌니도 1대3의 대결은 무리였던 것이다. 눈치가 9단인 살찌니는 이번 드바의 일도 혹시 자기에게 혐의가 오지 않을까 야옹거리며 전전긍긍했다 .
“시끄럽다, 이 노무 가시나. 잡으라는 쥐는 안 잡고.”
살찌니는 그날도 동촌 댁에게 싸리비로 얻어맞았다.
“아무리 닭대가리라고 하기로서니 이렇게 멍청할 수가.”
밤사이 잠든 닭 내장을 쥐들이 다 파먹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어서 어른들은 이번 일도 그런가 하셨지만 나는 알았다. 드바가 죽은 것은 아진이의 시샘 때문이라는 것을. 러시아어를 즐겨 쓰시던 아버지는 암탉들에게 아진(하나), 드바(둘), 뜨리(셋) 등으로 번호를 매겨 관리했다.
우리 뒤뜰의 우두머리 수탉 호러쇼는 열 닭마다 않는 카사노바였다. 그래서 만사가 좋다는 의미인 호러쇼라는 별명은 녀석에게 어울렸다. 원래 호러쇼의 첫사랑은 아진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녀석은 드바에게 공을 들였다.
성질이 난 아진이는 날마다 드바를 쪼아대며 못살게 굴었다. 견디다 못한 드바가 하루는 꽤 높은 우리 담장을 넘어 옆집 뜰로 피신한 적도 있었다. 닭들도 위기상황에선 새처럼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저녁에 닭국이 올라왔지만 나는 밥상 앞에 앉지도 않았다. 나는 드바를 먹을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드바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모두 몸통이며 부리가
샛노랑인데 드바는 부리와 가슴 쪽은 노란색이고 등 쪽은 희끄무레해서 눈에 띄었다. 비실비실해서 닭 노릇이나 제대로 할까 싶었다.
중닭으로 자라며 드바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몸이 작았고 모이도 재빨리 주워 먹지 못하고 늘 몸집이 큰 아이들에게 치였다. 드바가 안쓰러웠다. 지렁이를 잡아다 모여드는 아이들을 제치고 드바에게만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들은 내가 ‘구구구’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게 되었고 드바만 잽싸게 내 곁으로 와서 지렁이를 받아먹었다. 그 무렵이었다. 머리 나쁜 닭대가리라는 말에 내가 동의하지 않게 된 것이.
지렁이는 드바가 제일 좋아하는 별식이었다. 먹을 때마다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녀석은 다 자란 후에도 내가 뒤뜰에 나서기만 하면 어디선가 뒤뚱뒤뚱 달려와서 자근자근 내 신코를 쪼았다.
가족 중 누구 생일이나 되어야 밥상에 오르던 닭국이 무슨 일인지 매일 저녁 식탁에 올라왔다. 두 마리가 한꺼번에오르는 날도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뒤숭숭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아버지, 어머니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밤이면 멀리서 바람에 실려 대포 소리가 쿵쿵 들려왔다.
계사 식구들이 모두 없어진 며칠 뒤에 우리는 피란 길에 올랐다. 양순이는 진작에 강경 집으로 내려갔고 동촌 댁은 대구까지만 우리와 함께 간다고 했다. 집을 떠나던 날, 텅 빈 닭장 쪽을 자꾸 돌아봤다. 그 안에 드바가 쪼그려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남쪽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길엔 군데군데 살얼음이 깔려있었다. 대포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서울이여 안녕. 드바 안녕. 내 유년이여 안녕.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이름도 예쁜 드바!
한편의 단편소설같은 수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