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그리움을 넘어

                                                                                                                                    이희숙

 

 

 

   막새 바람이 분다. 나무 몸통에 붙어 있던 잎을 미련 없이 털어내며 이별한다. 지구의 중심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무욕의 계절이다. 하늘은 잎새 한 장도 허투루 떨구지 않는다고 하던가.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뒷집의 형체가 드러나니 나의 본모습을 들킨 것 같아 흘끔거린다. 45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어린이들과 헤어지며 그들에게 남겨질 나의 모습을 유추해본다.

 

  45년 동안 몸담았던 교직의 책임과 의무를 떠나보내니 낙엽처럼 둥지를 떠나 책갈피에 찾아든다. 시간을 돌아 이제는 가슴에 담긴 낙엽을 꺼내 볼 때마다 그리움 하나. 언제나 빨갛게 불타오르겠지.

 

  겨울비가 내리니 비 맞은 낙엽은 겸허하게 흙바닥에 몸을 눕힌다. 시간의 원리에 순응하며 제 뿌리 곁에 나부죽이 엎드린다. 떨어진 낙엽은 흙 사이에 스며들어 영양분을 만들어 저장한다. 빈 숲에서 흙은 숨을 고르며 내일을 준비하는 이유다. 그리움에 젖은 낙엽은 부스럭대며 살아나 생명의 숨소리로 내 가슴에 박동 친다. 가슴속에 썩은 낙엽은 움틀 봄의 새싹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죽음은 생명으로 싹틔우리라. 그리움은 새로운 만남으로 부활시킨다.

 

  <이별은 없어요> (동시)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세상이 없어지기나 한 것처럼/ 무서워해요

  친구와 어디를 가다가/ 꼭 잡았던 손을 놓치면/ 즐거웠던 일은 금방 없어지고

  두려워져요/ 혼자 되는 게 싫어서지요

  한 해를 보낼 때마다/ 첫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부끄러워지지만 그래도 새로운 약속   다시 할 수 있어서/ 새해 오는 것은 기다려져요

  헤어질 땐 언제나 섭섭하고 힘이 들어도/ 그럴 때마다 다시 만나는 세상이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이별도   그리움이 되어/ 하늘나라 가신 엄마 만날 수 있으니/

  우리에겐 이별이 있을 수 없답니다

 

  한참 울다 눈을 떠보니 저만큼 새로운 만남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 겨울과의 이별은 봄을 기다리는 것이기에 이별은 없다.

  무기력하고 의욕조차 상실한 채 지내던 어느 날, 미국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았다. 22세 어맨다 고만 (Amanda Gorman) 은 밝은 표정, 낭랑한 목소리와 힘 있는 손놀림으로 우리가 오르는 이 언덕 (The Hill We Climb)’을 축시로 낭송했다. ‘노예의 후예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의회 폭동을 보며 자신의 손이 컴퓨터 자판기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불타오르는 그림자에서 두려움 없이 걸어 나오리라. 새로운 새벽은 우리가 스스로 자유롭게 하리라. 빛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그 빛을 직시할 용기가 있고, 스스로 그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어린 시절, 말을 더듬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에 집중했고, 글쓰기 재능은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축복이라는 고백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미연합중국(United State of America)과 전 세계 사람의 가슴 속에 어두움을 넘어 빛을 향한 희망의 메시를 던지는 놀라운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지금도 인종과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언덕을 오르는 우리 어린이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