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릴레이 (Meal Train)                                                                                               

                                                                       (12/18/2020 중앙일보, 그린에세이 1월호에 실음)

                                                                                                                                                                                                                                                                                    이희숙

 

 

  귀를 의심했다. 딸이 알레르기 테스트를 하면서 유방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직 어린아이 같은데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습이 애처롭고 대견하게 생각했었다. 어느덧 마흔이 넘어 이제 몸에도 이상이 생기나 보다. 소식을 듣는 순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먹먹한 아픔이 밀려왔다. 엄마에게 딸이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아끼던 소중한 것을 빼앗긴 마음이랄까?

 

  발견 후 여러 검사를 했고 마음을 졸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주님, 제발!...' 떼어낸 네 군데 조직 중 오른쪽 한군데에서 딱딱한 것이 잡혔다. 몇 주 후, 유방암 1.5기이고 유전인자는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러 의사와 면담을 한 후 시술과 치료 방법이 결정됐다. 오른쪽 가슴을 6cm 정도 도려내고, 등 근육과 지방을 잘라 그 속에 넣는 수술을 한다고 했다. 다행스럽게 림프에는 전이되지 않아 항암치료 대신 방사선치료로 가능하다고 하니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딸은 소식을 들은 친구들에게서 위로의 꽃과 메시지를 받았다. 평소에 남을 잘 보살피던 그녀의 성품 때문인지 많은 지인까지 관심을 보이며 마음과 성의를 보여주었다.

 

  평소 직장인 어린이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도와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원장의 오른팔이 되었다. 자녀의 학교에서 현장 학습(Field Trip)을 하러 가면 부모가 못 따라온 아이를 챙겨주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며 자원봉사를 했다. 자녀의 축구팀에서도 코치를 도와 '팀마더(Team Mother)' 역할을 했다. 팀 어린이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하고, 경기 중에 다친 아이를 돌봐주며, 헌 물건을 모아 바자회를 열어 기부금을 마련하고. 소외된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친절을 베풀었다.

어렸을 때부터 갓 이민 온 어린이의 숙제를 도와주며 시간을 뺏기는 모습에 이기적인 엄마는 자신의 것을 챙기지 못하는 실속 없는 아이라고 걱정도 했다. 배려심이 많고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던 착한 딸에게 닥친 고난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아픈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수술을 앞두고 "Meal Train"이라는 타이틀의 웹사이트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알게 됐다. 친구와 친지가 매일 한 명씩 음식을 준비해 딸내미 집에 배달까지 해주는 '사랑의 음식 배달' 플랜이다. 처음 딸의 친구 엄마가 시작했는데 사랑의 손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치 레일 위를 컨테이너 상자와 상자로 이어진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듯. 다음 날엔 다른 사람이 이어 릴레이를 한 달 보름 동안 한다는 것이다. 직접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은 식당 선물카드를 보내주었다. 50명에 달하는 사람이 자원 등록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뭉클했다.

 

  어떤 경험자는 자신이 투병할 때 입었던 옷가지와 물건이 담긴 가방을 전해주고 경험담을 나누었다. 손자는 축구팀원들이 '기도합니다!'라는 문구와 그들의 사인이 적힌 축구공을 가져왔다. 친구 엄마의 쾌유를 기원하며 하나의 공에 각자 이름을 적어 마음을 모은 것이다. 피아노 레슨을 받는 제자는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를 잘 받으세요!'라는 격려의 카드와 함께 휴강인데도 레슨비를 넣어 가져왔다고 한다. 사랑은 마음을 이어주는 물결이 되어 전파됐다. 기도와 물질로 돕는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남의 아픔을 나누고 베푸는 온정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기적을 낳을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그 성원에 힘입어 딸은 '왜 나에게?' 'Why me?'이라는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평안을 찾았다. 긍정적이고 확고한 믿음으로 새로운 목표를 품게 되었다. 첼로를 전공하고 음악 치료사가 되길 원해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기에 아픈 이들과 함께 나눌 체험을 얻는 것은 소중한 것이다.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며 더 단단한 삶을 이끄는 자가 되리라. 나무가 생장하면서 추운 날씨엔 세포벽이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어져 나이테를 형성하여 연륜을 쌓아간다. 성숙을 위한 지름길은 없다. '얼마나 강하게 자랄 것인가?'에 관심을 두게 된다.

 

  하나님은 마지막 그날에 그 모든 선한 일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