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계획

                                                                                    이희숙

 

  

 

 

  많은 일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새해를 맞이하며 남편의 목회 생활 43년을 마무리하는 은퇴 예배 날짜를 정했다. 그는 몸을 돌볼 겨를 없이 외길을 걸어왔기에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남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나도 은퇴를 생각했다.

 

  어언 45년 세월을 어린이와 생활했다. 서울교육대학을 졸업한 갓 20대에 서울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민 온 낯선 미국 땅에서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은 어린이 교육이었다. 이민 2세를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목표에 충실한 결과 Happy Day Education Center28년 동안 운영하며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다. 부족한 대로 삼십 대의 젊은 열정을 쏟으며 도전하고 노력했다. 그 꽃이 피고 결실케 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머리를 숙였다.

 

  이제 때가 왔음을 인식하며 중요한 결단을 해야 했다. 그동안 일궈 성장하며 인재를 길러낸 교육기관의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발목을 잡고 함께 일해온 교사들의 앞날이 걸림돌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은퇴가 아님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무리하는 일이 시작보다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마지막 방법으로 빌딩과 비즈니스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린이와 선생님을 그대로 함께 인수하는 조건으로 세일 리스트에 올렸다. 관심을 가진 여러 팀이 우리 센터를 방문했다. 그중 경험이 있고 교육에 사명감이 있는 분과 에스크로를 열었다.

 

  3월 중순, 예상치 못한 비보가 세계를 흔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 공포가 휘몰아쳐 자택격리 행정명령으로 일상생활을 마비시켰다. 어린이와의 생활이 깨졌다.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한 달 동안 학교 문을 닫았다. 기다리는 마음 때문에 더 길게 느껴지는 탓인지 보고 싶은 얼굴이 오버랩됐다. 폐쇄된 양로병원에 홀로 계신 어머니, 어린이, 친구, 교우, 동료와의 관계 단절이 힘들었다. 마음을 달래며 난생처음 겪는 재앙 대책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아픈 눈을 자연으로 돌려보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의 소리를 들었다. 흙 사이에서 고개를 드는 연초록 어린이의 모습이 보였다. 한 달 후 용기를 내어 필수 직장의 부모를 위해 안전 수칙을 지키며 학교 문을 다시 열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저희 아이는 잘 있어요. 참 무서운 상황에도 사명감으로 아이를 가르쳐주고 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모를 위해 학교를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힘을 보태는 메시지를 받았다. 교육자의 사명을 일깨워주는 부모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첫 학교에서 한 과정을 수료한 어린이를 졸업식 없이 떠나보내야 했다. 대신 사진을 모아 앨범으로 엮어 사랑과 정성을 담았다. 한 장씩 넘기는 페이지 속에 우리가 함께 즐거워했던 추억이 안겨있어 행복했다. 신뢰 속에서 소중한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학부모에게 감사드렸다.

 

  계속되는 코로나 범유행으로 진행되던 에스크로가 취소됐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도피하려고 했던 것일까? 어려움에 직면하며 돌출 구와 해결책을 찾아봤다. 우리 3세를 위한 교육기관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인지 여러 방면으로 궁리했지만, 내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어찌 된 일인지 저번에 관심을 보이던 다른 구매자에게서 오퍼가 다시 들어왔다. 터무니없이 내려간 판매 액수 때문일까? 교육에 대한 사명감 때문일까? 결정하기 힘든 시기에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오퍼를 받아 에스크로를 다시 열었다. 지연되는 SBA 융자와 주 정부 새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6개월 반 후 우여곡절 끝에 에스크로가 종결됐다.

 

  지금까지 이끌고 이루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전능자의 손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은퇴는 사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깨우침을 갖는다. 사무엘이 은퇴 후 라마나욧 집으로 돌아가 "기도를 쉬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사역은 끝났으나 기도라고 하는 또 다른 사명을 수행했다. 그는 영적인 황혼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에게도 제2의 인생에 준비된 라마나욧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 글이란 기도다. 글을 통하여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누군가를 위로하고 소통하고 싶다. 새로 펼쳐진 환경의 가정을 돌보는 것과 글쓰기는 내게 주어진 또 다른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분의 계획에 순응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