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주는 위로

                                                                                                                                                                                                                                                                                             이희숙

 

 

 

  '집의 편안함을 누리세요!'

' Enjoy the comforts of home!'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신장 투석 크리닉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다. 남편이 혈액투석을 시작한 지 석 달을 지난다. 생전 처음 겪는 어려움에 긴장했지만 이제 몸속 기관들도 적응이 된 듯 피검사 결과가 더 좋아진다. 의사가 권하는 '신장 복막투석'이라는 시술 방법이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다.

 

  복막투석(Peritoneal Dialysis)은 배 즉 복막에 튜브(Catheter)를 심는 수술을 하고, 투석액(포도당)을 넣어주면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삼투압 원리에 의해 몸속에 남았던 불순물이 걸러진다. 간단한 원리의 치료지만 신장의 기능을 대신해 준다. 새로운 지식을 접하며 시술을 발명하고 적용한 의료과학자에게 경이와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용기를 내 교육받고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한다. 허들 경기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와 장애물을 넘었는데, 이번 차례는 말을 타고 넘어야 하는 코스에 와 있는 듯.

 

  세 시간씩 열 번의 이론과 실기를 교육받는다. 청결을 철저히 유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손을 닦고, 주변을 소독하고, 장갑을 끼고'를 반복하며 집중해서 실습한다. 병균 감염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므로 느끼고, 살피고, 안전한가를 점검한다. 트랜스펄 세트를 여닫으며 투석액을 집어넣어 주는 작업을 기계가 아닌 내 손으로 직접 하다니. 하나하나 과정이 손에 익을 때까지 반복하며 두려움을 몰아내고 자신감 있게 안정된 자세로 말이다. 먼저 투석액을 투여하기 위해 몸속의 불순 액을 빼내야 한다. 그 치료 행위에서 비워내야 담을 수 있다는 숨겨진 진리를 발견한다. 깨끗한 그릇이 쓰임을 받듯이.

 

  혈액투석에 비해 많은 장점이 있다. 첫째, 혈관이 몸 밖으로 나오지 않고 몸 안에서 투석하므로 심장에 무리가 없는 방법이다. 둘째, 기계가 일하기 때문에 신장이 쉬는 부작용이 발생했는데, 신장은 계속 기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음식의 제한이 조금은 자유스럽다. 신장에 좋고 나쁜 음식을 구별하고 금지해 입맛을 잃었는데, 식단을 짜는 어려움도 덜어줄 수 있다니 반갑다.

 

  더욱이 직장 생활이나 여행 등 외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자유를 얻은 듯 쾌거를 부른다. 기계를 이용하면 잠자는 시간에도 가능하니 낮에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투석을 할 수 있어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니 환자의 삶을 위한 긍정적인 치료 방법임이 틀림없다. 크리닉을 가지 않고 집에서 투석하며 편안함을 안겨주니 어찌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집이란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 일정한 공간과 구조를 갖추어 지은 건물로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막아준다. 일상을 함께 하는 곳으로 휴식, 충전과 평안을 준다. 시대가 변하며 기능과 취향을 반영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별히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시간을 집에 거주하면서 집의 기능은 더 폭넓게 변한다. 다양한 역할을 담아 혜택을 준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사무실과 자녀의 온라인 수업을 위한 교실 역할 뿐 아니라 자녀와 여러 세대가 힘을 합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삶에 필요한 행복을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약한 몸이 치료받으니 값없이 받는 위로인 듯싶다. 우리 집 안방에 걸린 족자 속 'Having a place to go is Home. Having someone to love is Family. Having both is a Blessing.'이라는 문구가 크게 눈에 읽힌다.

 

  도전해보고 싶었던 스페인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순례자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건강이 허락지 않아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는데, 이미 그동안의 생활 속에서 걸어오지 않았는가? 닥쳐온 상황에 두려워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자신을 비우며 고난을 이겨간 길이었다는 것을. 그 순례자의 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평안한 모습이 비친다. 집에서 주어지는 나의 소임에 의미를 둔다.

 

  인생의 여정을 집이 주는 위로와 쾌적함으로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