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다

                                                                                                                                    이희숙

 

  나만의 해결 과제가 있다. 2 년마다 비전 드라이브 테스트를 치러야 한다. 왼쪽 눈의 시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12월에 예약하고 눈 정밀 검사 서류(DL 62 Vision Form)를 제출하여 4월에 운전 실기 시험 날짜가 잡혔다. 코비드 19로 인해 9월로 연기됐다. 6 개월이 지났기에 다시 눈 검사를 해야 했다. 시력이 나쁜 하얀 머리 할머니를 환영하지 않을 것 같아 머리를 검게 염색했다. 자격지심에서 오는 보완책이지만, 성의라고 여겼다. 손주들이 "할머니, 시험 잘 보세요!"라고 응원하며 내 차를 닦아 주었다. 호스로 물을 뿌리고 걸레로 닦으며 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

 

  아직 나에게 맡겨진 임무가 있음을 깨달으며 마음을 추스른다. 이제 은퇴해 운전대를 놓고 싶은데 아직 주어진 일이 있다. 남편이 신장 기능이 좋지 않아 신장투석을 일 주에 세 번씩 해야 한다. 바쁜 딸내미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 내가 병원으로 차편을 제공하고 싶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생활 일정이 되었다.

 

  당일에 DMV 긴 대열에 합류했다. 코비드 19로 직원과 시험관 인원수가 감축된 탓인지 진행 속도가 늦고 줄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실내에는 의자도 드문드문 놓여 있고, 야외에서 기다려야 했다. 뙤약볕에서 두 시간이 넘게 인내하며 서 있었다. 등의 땀이 물줄기 되어 흐른다.

 

  앞과 뒤에 있는 10대 젊은이가 부모와 함께 날 힐끗 쳐다본다. 혼자 온 할머니가 이상해 보였을까? 코비드 검사관이 다가와 묻는다.

"누가 운전 시험을 봅니까?"

"내가 봅니다."

믿기지 않는 얼굴로 재차 물어본다. 비전 드라이브 시험이라고 대답하니 그제야 수긍한다. 몇 가지 질문과 발열 검사 후 스티커를 받아 가슴에 붙였다.

 

  기다리는 대부분 사람은 처음 운전면허를 획득하는 틴에이저다. 눈망울이 또랑또랑 빛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에 부푼 마음을 엿본다. 차를 운전한다는 역동적인 힘이 솟는 듯하다. DMV를 배경으로 V자를 만들며 사진을 찍는다.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패기에 차 있다. 부러워 바라보며 '나도 그땐 그랬지'라고 그들의 마음속으로 빠져든다. 처음 미국에 와서 LA 시내의 복잡한 길을 피해 새벽에 운전 연습을 했다. 차가 움직여 앞으로 간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운전대를 놓기 싫어했던 지난날을 기억하니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돈다.

 

  며칠 전 고등학생 조카가 운전면허를 획득하고 우리 집으로 차를 주행해 왔다. 흐뭇해하는 모습에 마음껏 칭찬해 줬다. 두 딸 역시 열다섯 살이 되면 시키지 않아도 필기시험 공부를 하고 실기시험에 임했다. 자신의 차를 마련하기 위해 용돈을 모으던 태도가 기특해 새 차가 생기면 가족여행을 갔다. 프리웨이를 달리는 딸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싶어서였다. 젊은 날의 도전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마음의 자세를 바꾼다. '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라고.

 

  내면엔 운전을 그만둘 나이에 새삼 운전시험을 보아야 하는 불만을 품고 있다. 평상시처럼 운전시험에 임했다가 여러 차례 낙방의 쓴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쁜 기억을 떨치기 힘들다. 시험은 언제나 긴장되고 위축게 한다.

 

  서류 절차가 끝난 후 차를 타고 줄 섰다. 운전대를 잡고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수신호, 응급 브레이크, 왼쪽, 오른쪽으로 고개와 어깨를 돌려 큰 행동으로 연습도 해본다. 내 차례가 되어 시험관이 다가온다. '제발 한 번에 통과하게 해 주세요!'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서류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시험관이 말문을 떼었다.

"시력에 변화가 있나요?"

"처음 당시와 똑같습니다"라고 대답하자

"2006년부터 변함없는 시력(stable condition)이므로 운전 실기시험은 필요 없습니다."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새 면허증은 1년 유효하다고 한다. 내년에도 '그땐 그랬지'라며 처음 마음으로 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