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의 추억                                 ( 9/26/2020 중앙일보 독자 마당에 실림)

                                                                                                                                                                                                                                                                          이희숙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달력 속에 어린이날과 어머니날이 들어 있다. 우리 어린이학교는 매년 가정의 달이면 운동회를 개최한다. 자카란다 보랏빛 꽃그늘이 공원을 물들일 무렵. 어린이들이 엄마가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을 메고 공원으로 걸어간다. 아이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는 날이다.

 

  어린 시절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 만국기가 휘날리던 그 날의 풍경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난다. 흙으로 곱게 다져진 운동장은 하얀 횟가루로 선이 그려져 있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머리띠를 두르고, 검정 팬츠를 입고, 흰 덧신을 신었다. 운동장에 들어설 때,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흰 구름에 닿았다.

 

  ‘하나, , , 국민체조를 하며 운동회는 막이 올랐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나는 힘껏 뜀박질을 시작했다. 체력이 약한 나는 등수 안에 들지 못해도 끝까지 달린 것만으로 만족했다. 어떤 친구는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어린이들은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두 팀으로 나뉘어 열렬히 응원했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한 매스게임, 곤봉 댄스, 부채춤은 축제의 꽃이었다. 큰 부채를 들기에 내 손이 너무 작았지만, 한복을 차려입고 족두리를 쓰면 공주가 된 듯했다. 원을 그리고 파도를 만드는 부채춤은 화려했다. 큰 바구니를 모래주머니로 쳐서 터뜨리면 반으로 쫙 갈라지며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로 점심시간을 알리는 이미지랄까. 엄마의 정성이 담긴 김밥, 삶은 달걀과 밤을 먹으며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푸짐한 대화로 꽃을 피웠다.

 

  점심 식사 후 열기는 더해졌다. 어린이는 뛰고 구르고 굴리며 온몸을 불살랐다. "영차영차" 힘을 모아 줄다리기도 했다. 부모와 자녀가 배턴을 건네며 이어달리기하면 운동회는 절정에 달했다. 달리기를 잘하시던 우리 아버지가 제일 멋져 보이던 날이었다. 옆 마을, 윗마을 어르신까지 참석하여 동네잔치와 다를 바 없다. 푸짐하고 정이 넘치는 축제였다.

 

  지금도 운동회는 즐거운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나에게 주는 울림은 크다. 성인이 된 내가 교육기관을 운영하면서 해마다 운동회를 개최하는 이유인가 보다. 그뿐인가 부모가 참여토록 권장한다. 어린이가 부모와 서로 사랑을 나누는 데 가치를 두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펄럭이는 깃발 아래 줄을 맞춰 섰다가

  땅! 하는 신호와 함께/ 배턴을 주고받으며 릴레이를 한다

  꿈을 실은 기차가/ 칙칙폭폭 호흡을 맞춰가며 달리듯

  아이들이 둘씩 한쪽 발을 묶어 달리다가/ 넘어지면 어때? 다시 일어나 달리면 되지

  큰 공을 굴리고/ 높이 매어 단 커다란 바구니를 향해

  작은 모래주머니들이 새 떼처럼 치솟아 오르고

  우리 팀 이겨라!/ 우리 팀 이겨라!/ 응원하는 소리가 운동장을 메운다

  꼬마들은 엄마 등에 업혀/ 사탕 따먹기를 한다

  운동장 가득 번지는 웃음들/ 친구야 잘했어!

  서로서로 칭찬하며 마무리하는 운동회/ 날마다 운동회 날이면 좋겠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해내며 바쁘게 살아간다. 가족의 구조, 기능, 역할이 변했다. 부모 중 한 명은 출근 시간에 늦지 않도록 프리스쿨에 아이를 맡기고 달려가야 한다. 숨 가쁜 직장 생활하며 육아에 최선을 다한다지만 힘에 겹다. 부모는 짧은 시간의 자녀와 만남으로 그들과 대화하거나 이해하기는 부족하다. 친구와 잘 지내던 어린이가 부모에겐 떼를 쓰며 관심을 얻고자 하는 사례를 보기도 한다. 자녀의 말과 감정에 집중하여 공감하고 경청해 줄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가정에서 대화의 결핍 또는 부재로 가족 관계가 균열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운동회는 가족의 갈등이 치유되는 장소가 된다. 이날만은 헤어진 엄마 아빠가 자녀를 위해 함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아이와 하나가 되어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으로 끈끈한 신뢰가 쌓인다. 서로 마음을 전하고 받으며 행복이 싹튼다.

 

   온 가족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한마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