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고 싶지 않은 사람들

                                                        (6. 27. 2020 중앙일보)

                                                                           이희숙

 

 

  '유월'하면 떠오르는 날이 있다. 현충일이다. 그날엔 어김없이 어머니와 가는 곳이 있었다. 동작동 국립묘지 한쪽에 자리 잡은 외삼촌의 묘이다. 그곳은 과거를 잊은 듯 평온한 초록 잔디 위에 조기가 줄지어 꽂혔고 하얀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외삼촌은 19살 고등학생 신분으로 학도병에 징집되었다. 제대로 군사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선에 투입되었기에 남침하는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꽃을 준비하셨다. 시신도 없는 빈 무덤 앞에서 동생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붙잡고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Washington D.C.를 방문했을 때 한국전쟁 참전 용사 추모 기념관 앞에서 내 발걸음이 멈추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이 180만 명,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명의 군인을 조각해 놓았다. 화강암 옆 벽에 비추어지는 19명을 합하여 38명은 북위 38선과 전쟁 기간이었던 38개월을 상징한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gainst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전혀 만나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나라에서 그들은 왜 싸워야 했던가?

 

  어머니마저 떠나고 안 계시는 올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으며 미주 신문에서 기사를 읽었다. 미네소타주에서 18~21세의 청춘의 나이로 지구 북동쪽 귀퉁이에 있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의 이야기다. 미국 북단에 있는 미네소타주의 혹한이 한국의 겨울과 흡사해 추위에 익숙한 병사가 필요한 까닭에 맺어진 인연이라고 했다. 참전 용사 중에는 전쟁에 나갔다가 미처 피지 못한 채 스러진 많은 젊은이가 있다. 세인트폴의 기념관 조형물의 중심에 군인이 서 있는 모습을 뻥 뚫리게 파놓았다.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군인을 뜻한다.

만져지지 않는 뚫린 형상에서 먹먹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잊히고 싶지 않아요.'라고. 그들은 잊힌 사람이 아니다. 전사자의 영혼을 표출한 동상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흔히 잊힌 전쟁 'Forgotten War'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을 잊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

 

  전쟁 참전자 몇 분은 어언 90세가 넘은 나이로 생존해 계셨다. 전쟁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던 그들은 휴전 후에 전쟁고아를 입양하며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고마운 소식을 들었다. 인천 상륙 작전과 평양탈환 작전에 참전한 분도 계셨고 이름 없는 노병은 한국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광화문과 갓 쓴 어르신의 사진이 담긴 할아버지 유품을 보관한 참전 용사의 손자는 한류 팬이라고 했다. 그 기사가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전쟁터에서 기적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이 잊힌 영웅들을 찾아 감사를 전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젊고 뜨거운 희생의 피로 대한민국이 평화와 번영을 이루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두진 작사의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시작됐고 16개국 유엔군 파병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안다. '삼 일 후에 돌아오리라'하고 떠나온 실향민들의 눈물 속에 반복되어선 안 될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와 흔적이 남아있다.

 

  미국 내에 최초로 세워진 맨해튼 배터리파크 기념비를 비롯해 내가 사는 플러튼시 힐크레스트 공원에도 희생자 전원의 이름을 새기는 기념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기념 조형물은 차세대 역사교육 자료가 되어 큰물을 끌어 올릴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이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잊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동생과 지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뵙지 못했어도 외삼촌이 친절한 성품을 가졌으며 야구와 영어도 잘하셨다는 훌륭한 점에 대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외삼촌은 우리 가족의 마음에 여전히 살아 계신다.

 

  잊힌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고, 잊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 희생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되어 우리를 유지하고 성장시킬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