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동네'는 '나쁜 동네'가 아니다      (11.12.2020 중앙일보 이 아침에 실림)
                                                                                                이희숙
 

  애너하임에서 백인 원장으로부터 인수한 어린이학교를 어언 30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나름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한글 '어린이학교' 간판을 걸었다. 프리웨이가 가까워 학생들은 멀리에서도 찾아온다. 우리 예절과 글을 가르치고 한국 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은 교통이 편리하고, 상권과 학교, 병원, 공원이 가까운 곳에 있기에 여러 민족의 중산층이 거주한다. 덕분에 이민 1세인 내가 처음엔 한인 위주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다민족 학교로 변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외면했던 지역 내의 타인종 어린이에게도 눈을 돌려 관심을 표한다. 인종 분포도 다양해 15개국이 넘는 국적의 어린이가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고 문화를 나눈다. 서로서로 타문화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롭고 새로운 의욕을 준다.

 

  새로 입학하는 한인 학부모는 "이 동네가 안전한가요? 이웃이 위험하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탓에 '뒷동네의 아파트 단지가 신경이 쓰이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은 소득층이 많이 모여 산다. 당연히 이민을 갓 오거나 수입이 적은 서민이 거주하는 지역이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지역의 학교는 가주 모의고사 점수가 낮아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는 피하게 된다. 형편이 나아지면 곧바로 학군이 좋다는 백인 거주 지역으로 이주한다.

 

  가난한 동네를 나쁜 동네로 인식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언짢다. '가난한 동네''나쁜 동네'가 아니다. 빈곤으로 인해 도래하는 불편과 힘든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더럽게 어질러진 주변, 소음, 공중의식 결핍 등 외면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기는 한다. 그렇지만 오히려 가난한 동네의 생활 속에서 순수한 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물질의 궁핍과 어려움을 겪던 모국, 멕시코나 그 외 남미 여러 나라보다 편리하고 나은 생활환경에 감사하며 많은 자녀를 거느리는 낙천적인 모습을 본다. 그런 삶은 행복지수의 성취도를 생각하게 한다. 행복과 물질은 비례하지 않음을.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이 쓴 소설 '파친코에 그려진 1940년대의 오사카 재일교포 밀집 지역 이카이노의 충격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글을 읽으며 애너하임 학교 뒷동네 아파트 단지를 생각했다.

'이카이노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판잣집들로 똑같이 값싼 자재로 엉성하게 지어져 있었다. 무광택 신문지와 타르지가 창문 안쪽을 덮고 있었고, 지붕에 사용된 금속은 녹슬어 있었다. 집들은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고 오두막이나 텐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돼지와 조선인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불렸고 이웃엔 안에서 돼지를 기르는 집도 있었다. 일본인은 괜찮은 땅은 조선인에게 임대해 주지 않았기에 재일교포들은 이곳에 모여 살았다.'

 

  소설의 첫 문장은 '역사가 우릴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시작한다. 파친코는 '가난과 범죄의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라고 서술하며 조선인 운명의 굴레를 상징한다. 이 장편 소설은 미국 컬럼비아대에 유학을 다녀온 4대 손자 솔로몬도 뉴욕의 금융계에서 해고된 뒤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는다는, 조선인의 운명을 다룬 이야기다. 가난이라는 불평등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이민자의 피와 눈물의 대 서사(敍事).

 

 

   작가 이민정은 새로운 삶을 찾아온 미국에서 가난한 동네의 쥐가 나오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헌신적인 부모의 뒷바라지로 예일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이민자의 삶을 그렸다. 그녀가 일본에서 4년간 거하며 쓴 이 책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USA투데이 올해의 책 등으로 인정받아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가난하게 사는 데는 원인이 있고 그것이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게을러서, 돈 관리를 못 해서... 심지어는 가난한 것은 네 탓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늘 공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행위와 상관없이 사건과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가난의 세습과 빈곤의 악순환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부모의 가난으로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이 겪는 반복되는 빈곤 속 어려움은 가려져 있다. 더욱이 이민 초기의 생활은 '가난'에서 시작한다.

 

  가난은 극복할 수 있다. 빈곤자나 이민자의 자손이 가난한 동네에서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꿈은 가난한 동네에서도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가난한 동네'나쁜 동네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