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

                                                                                                           이희숙

 

 

 

  피하고 싶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의사의 권면에 이어 마지막 경고까지 견디었는데 더는 위험하다고 했다. 식이요법만으론 한계에 이른 것이다.

 

  남편의 43년 외길 목회자의 삶이 긴장과 고난의 길이었던가? 한국전쟁 시 갓난이로 엄마 등에 업혀 남하해 시골 목회자의 아들로 힘겹게 성장했다. 공부하고 싶다는 학구열 하나로 서울로 상경하여 부실했던 기초체력을 뛰어넘어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이어갔다. 신학 대학을 졸업한 형이 서울 철거민촌에 설립한 교회를 함께 섬기며 젊은 시절을 헌신했다. 부흥되고 안정된 모 교회를 떠나서 낯선 땅에 이민 교회를 개척하며 71년을 견디다 보니 몸의 부속도 고장 날 만했다. 태평양을 건너며 거센 파도에 밀려 모서리가 닳아지고 생채기 난 조개껍데기처럼.

 

  십여 년 전 그는 대장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잘 이겨냈다. 당뇨라는 늪 속에서 좋아하는 음식까지 절제했건만 신장의 기능이 약해졌다. 모래에 물이 스미듯이 소리 없이 서서히. 의사는 신장은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니 우리 내외는 최후의 방법을 따라야만 했다.

 

  혈액 신장 투석을 받는다. 심장에서 나온 두 갈래 줄이 기계에 주렁주렁 달려 연결되어 있다. 한쪽 줄에서 붉은 혈액을 뽑아낸다. 심장 속 뜨거운 열기는 기계속에서 정화되어 차가워진 채 인공 박동으로 다시 몸속 제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세 시간 동안 순환을 반복하며 신장에서 미처 거르지 못한 노폐물과 독소를 정화한다. 혈액이 몸 밖으로 외출한 후 돌아온 탓인지 온몸이 춥다. 한여름이지만 두꺼운 담요를 덮고 장갑과 털모자까지 착용해야 한다. 혈압이 내려가고 어지러운 증상을 보이지 않는가.

 

  투석을 받은 첫날에 남편은 토하고 혈관의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 응급실을 찾았다. 지혈 주사를 맞고 처치를 받으며 마음의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뚜렷한 원인도 찾지 못하면서 말이다. 놀라운 의학 기술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몸은 적응 기간이 필요한 탓인가 보다.

 

  일상이 바뀌고 일주일에 세 번씩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니 우린 마음이 편치 않다. 그동안 곁에서 몸 상태를 조절하지 못한 죄의식이 내 마음을 아프게 졸여온다. 기계 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혈액의 회전처럼 많은 생각으로 내 머릿속도 어지럽다. 새 임무가 기계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우리 몸 좌우 양쪽에 있는 콩팥 즉 신장이 혈액 속의 노폐물을 걸러내어 소변으로 배출시키고 혈액 속 농도와 혈압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신장이 제 역할을 못 하면 노폐물이 몸에 쌓이게 되므로 피를 뽑아 그 속의 찌꺼기와 필요 없는 수분을 걸러서 깨끗해진 피를 다시 몸속에 넣는다. 기계가 병든 콩팥을 대신하는 치료 방법인 셈이다.

 

  이른 아침에 "굳 모닝" 인사하며 두꺼운 옷과 담요를 넣은 큰 가방을 들고 환자들이 출근한다. 휠체어에 앉아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분위기는 밝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간호사의 손길만큼 병실 안은 활기차다. 환자들은 누워 쉬고,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며 나름의 평범한 일상 모습으로 비친다. 그들의 평안한 모습을 보며 나의 마음가짐도 바뀌어 간다. 습득하는 지식도 넓어진다. 먼저 발전된 의료 혜택에 감사하자고 되뇐다. 신체의 한 기능이 약해졌지만, 기계가 도울 수 있다니 예전엔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시작임을 인정하고 노폐물이 여과되어 깨끗한 피를 형성함에 새롭게 거듭나는 은혜를 느껴본다.

 

  한편 나의 속내에도 투석이 필요하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평생 도전과 부딪혀 살아오며 쌓인 노폐물이 무척 많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앞으로만 달리며 알지 못하게 생겨 엉킨 배설물을 생각지 못했다. 오염된 생각과 의식, 생활 습관과 행동의 정화가 필요하리라. 여과 없이 쏟아낸 말 역시 남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까? 이루어진 화려한 성취 뒤에 숨겨진 더러운 찌꺼기를 정화하는 투석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성찰과 참회의 투석액을 넣어 내 속 깊숙이 쌓인 죄의 요소를 걸러내자.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숙연한 기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