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를 담은 까치밥’     (10/23/2020 중앙일보 이 아침에 실림)

                                                                                                                                            이희숙

 

 

  몇 년 전 앞뜰에 아기 감나무를 심었다. 한 해 두 해를 지나며 키를 더하고 어깨를 넓힌 나무는 따스한 봄볕을 마주 보며 올해는 노란 감꽃을 피웠다. 마치 아가 볼에 있는 보조개를 보는 듯 사랑스러웠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감꽃을 엮어 목에 걸고 소꿉놀이를 했던 추억이 떠올라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꽃을 피운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감꽃이 비처럼 떨어졌다. 땅바닥에 짓이겨진 추한 모습에 상심했지만, 헌신이 있어야 다음 세대로 생명을 전한다는 자연의 질서를 헤아린다. 꽃의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아야 열매를 볼 수 있다는 역설이라고 할까.

 

  자그마한 체구에 가지가 휘어지도록 감이 달린 모습을 보니 기뻐하기보다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가을이 깊어지며 짙어지는 주홍빛은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뤘다. 감잎도 단풍이 들며 마당은 가을빛으로 꽉 차 보름달이 둥그렇게 차오르는 한가위 무렵엔 풍요함을 더해 주었다.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며 황금빛 열매를 조심스레 하나 둘, 바구니가 꽉 차도록 따다 보니 감이 몇 개 남지 않았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나뭇가지의 열매는 남겨 두기로 했다. 완숙하게 익을 감을 고대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말랑말랑 익으면 더 맛있겠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 날, 애지중지하며 지켜보던 나뭇가지의 감이 없어졌다. '어머! 누구의 짓일까?' 누군가 따간 것이 분명했다. 사라진 원인을 곰곰이 생각했다. '외부에서 누가 들어왔지? 마당에서 일하던 사람이 그랬을까?' 의심의 불길이 마구 번져 나갔다. 1년 동안의 결실을 노력 없이 가져간 행위가 괘씸했다.

곁에 나란히 선 야자수의 넓은 이파리가 손바닥을 벌려 감나무와 어깨동무하고 있는 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내 눈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왔다. '저게 뭐지?' 야자수의 나무 기둥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감이 틀림없다. 이빨 자국이 남겨진 채 먹다 남은 것이 울퉁불퉁한 나무 몸통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누가 저런 재주를 부렸을까?'

 

  며칠 후 어둠이 물러가는 어스름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광경이 내 눈에 잡혔다. 다람쥐가 야자수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바로 감을 따간 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람쥐가 저렇게 높고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를 올라가긴 어려웠을 텐데. '-!'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우리 집 울타리 안에 야생 동물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릿속은 밀려 들어오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뒤죽박죽되었다.

 

  우리 선조는 나뭇가지의 감 몇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 두던 풍습이 있지 않은가. 까치밥은 하늘을 나는 새의 생명을 위해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생긴 양보며 나눔이다. 차가운 겨울에 배를 주릴 하찮은 미물까지 돌보는 따뜻한 이야기다. 날짐승과 자연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 애지중지하는 여유와 풍요로운 삶의 시작이 될 터이다.

 

  '어느 나그네가 가난한 선비 집을 방문했다. 주인은 자기 자녀에게 줄 양식이 없음에도 예의를 갖추어 음식을 대접했다. 눈치를 챈 객은 방문 밖에서 기다리는 배고픈 어린 자녀들을 위해 밥을 다 먹지 않고 나머지 몇 숟가락을 남겼다.'

'남편 없이 보리 이삭줍기로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효부 룻을 위해 농장 주인 보아스는 일군에게 밭에 낟알을 모두 줍지 말고 일부러 남기게 했다. 보아스의 친절한 사랑을 통해 룻은 다윗 왕의 조상을 낳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다.'

두 이야기에서 남을 위해 여유분을 남기고 나누는 관대한 정신을 엿본다. 미담 속에 담긴 조상의 슬기로운 태도가 교훈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과일까지 익혀 먹으려 했던 내가 창피하다. 감 한 알도 나누지 못한 옹졸한 마음을 반성한다. 부족한 듯 모자란 듯 여유를 남겨도 되는데 야박하고 인색했다. 난 철저함에 집착하고 다하지 못한 것에 미련을 갖지 않았던가.

 

  '까치밥'의 정신은 시대가 바뀌어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미풍이다. 세상의 허기진 사람 몫으로 남길 우리 시대의 까치밥은 무엇일까? 나의 인생 나무에 까치밥을 준비했는가를 생각할 절기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넉넉한 인정으로 이웃과 함께 훈훈하게 살아간다면 주홍 알갱이가 하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환한 빛을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