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현장이 사라진 시대                (8/26/2020 중앙일보 이아침에 실림)

                                                                                                                                                    이희숙

 

  새 학기가 시작되는 절기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졸업과 입학을 축하하는 행사를 할 수 없다. 한 과정을 시작하고 맺는 메시지도 전할 수 없다. 설렘이 사라져 아쉬움으로 남은 채, 학생을 보내고 맞이하는 교사는 그림자 위에 '교육'이라는 실상을 덧입혀 본다.

온라인 수업으로 개학을 맞는다. 교육의 장이 노트북이나 아이패드의 공간으로 좁혀져 작은 컴퓨터 화면 안에서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 인사한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통해 교육 내용은 들려도 서로 눈은 맞추지 못한다. 소통이 없는 수업이 진행된다. 생의 이해 정도를 감지할 수 없다. 스토리 텔링의 교감도 없다. 교육자료를 준비했는데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교사의 땀방울을 본다.

  더욱이 이제 첫 프리스쿨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의 문을 들어서는 꼬마들은 방향을 모른다. 기대에 들떠 교실 문을 열고, 운동장에서 친구와 뛰놀며 학교생활을 익혀야 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선생님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생소한 기계를 통해 수업을 받아야 한다. 어린 나이엔 아직 집중력이 길러지지 않아 오랜 시간 앉아 있을 수 없어 힘든데.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어린이가 온라인 수업을 받아야 한다니 부모와 교사는 걱정이 앞선다. 이런저런 상담 전화도 이어진다. 교육의 지침은 보이지 않고 원격수업은 애로사항에 부딪힌다. 안개 속에서 미로를 찾는 것처럼 뿌옇다.

  유아교육 커리큘럼 첫 달의 주제는 '웰컴 투 스쿨'이다. 학교생활과 규칙을 배우는 것이 목표다. 친구를 사귀며 나누고, 순서를 기다리며 규정을 익히는 게 우선이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다. 부모와 울지 않고 인사하며 헤어져 새로운 환경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데는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스스로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며 얻어지는 성취감 위에 자존감이 형성된다. 이것은 평생 자신을 이끌어 갈 밑거름이 되는 중요 요소이다.

  유 초등학교의 교육관(Philosophy)은 전인교육이다. 신체적인 발달과 함께 정서적, 지적 발달이 균형 있게 성장해야 올바른 인성교육이 이루어진다. 기본생활과 학습습관 즉 집중력, 지구력 등을 길러 창의적이고 탐구적인 자세를 길러주는 것을 지향한다.

  이런 교육이 어디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현장이 사라진 시대이다.

  한국에서 고교 교사를 역임한 이관희의 <선생으로 사는 길>이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그는 잠자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꿈, 멋진 세상을 살자면 내가 깨달아 내 힘으로 먼저 읽고 질문해야지. 틀리는 것 두려워 말고 끝까지 풀어내는 거야. 듣기만 하고 받아쓰고 외우려고만 하는 아이들아, ㅇ 자 ㅁ 자에 색칠만 하는 아이들아, 그려진 빈칸 메우지 말고 밑그림 없는 백지에 내 그림을 그려봐. 잠자면 점수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청춘도 놓치고 말아. 사람이 살아야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이 올 거야. 눈 떠 빛나려무나!"라고 했다.

  그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했던 '듣고 잊어버리는 콩나물에 물을 준다고 매일 크는 키가 보이던가? 어느 날 훌쩍 키 큰 콩나물을 보는 기적을 바라 오늘도 물을 주는 수고를 거듭해야 하리라.'라는 다짐을 읊조리며 교육의 공간이 다시 열리길 기대한다.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보호가 우선인 요즈음이다. 교육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현실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밝은 햇살에 안개가 걷힐 날을 기다린다. 그때는 어린이와 소통하며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장소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