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작품 선정릉 #16476 8/2/2020
줄 두 개 뿐이지만 / 김영교
그 즈음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 이사장이 보내온 청소년 음악회 초대권을 받고도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가 말어 망설이고 있었다. 바이올린과 플릇을 하는 조카벌 수지와 민지를 위해서 우리 두 내외는 털고 일어나 기꺼이 앞장을 섰다. 일직감치 LA 다운타운 디즈니 홀 지하 4층에 여유 있게 주차하고 들어와 화장실을 거쳐 편안하게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쇼스타코비치가 그의 교향곡 5번을, 부람스는 대학축전 서곡을 아름다운 화음으로 펼치며 기분 좋게 다가왔다. 하루의 피로를 저 멀리 밀어내 주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지휘자의 박력 있는 지휘는 휙휙 보이지 않는 소리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넉넉했다. 신나는 여름밤을 한 아름 가슴 가득 안겨주어 기분이 고조되어 갔다. 소통이었다.
이조여인도 아닌 내가 푹 빠진 순서 하나는 처음 만나는 해금 연주였다. 무겁고 답답한 가슴이 트이며 시원한 바람의 왕래를 경험하였다. 바로 음악에 있는 치유의 힘이었다. 품에 안긴 수줍은 해금, 참으로 귀엽고 작은 몸집이었다. 정말 외소한 몸집이었다. 작은 고추의 매운 연주를 해 낼까 기다림이 조마조마 했다.
원래 해금은 두개의 줄을 문질러 마찰하여 소리를 내는 한국 전통악기 중 사부(絲部)에 속하는 찰현(擦絃)악기라고 한다. 해금은 대부분 내림조가 편안하고 수월하며 서양악기인 바이올린 종류 관현악과의 어울림을 통해 상대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아름답게 이어가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두 줄 밖에 없어 지극히 외소 해 보이는 현악기, 앉아서 무릎 위에 올려 놓아져 마찰에 온 몸을 내 맡기는 해금, 저토록 조그만 울림통이 어떻게 저토록 음역이 넓을까 싶다. 이조(移調)가 쉬운 융통성을 장점으로 지닐 수 있을까싶다. 작은 몸짓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예로부터 궁중음악으로 널리 쓰였다는 자료만 봐도 왜 총애를 받아왔는지 납득이 가는 악기였다. 그야말로 두 줄 밖에 없어 한없이 빈약 해 보이는 현악기, 앉아서, 무릎위에서 피가 터지도록 마찰해야 나오는 해금소리, 연주자는 대가 다운 솜씨로 관현악과 어우르며 협주곡 ‘추상’ (이경섭 작곡 이용희 편곡)을 서정적으로 잘 뽑아 끌어올렸다.
낯설음이 었다. 조심스레 다가와 산들 바람으로 들판을 휩쓸다가 산으로 올라가 나무들을 흔들기도 하고, 시원하고 경쾌하게 내닫는 솜씨는 냇물이 되어 감미롭게 흐른다. 넓게 빠르게 계곡을 흘러 잔잔한 햇살로 눈부시게 퍼졌다. 관객의 가슴을 관통하면서 스트레스를 말끔히 내몰아 주는 시원함이 있었다. 작은 악기,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양악기가 큰일을 해내는 기적을 보며 가슴이 찡한 감동으로 출렁댔다. 처음 협연을 할 때 이곳 청소년들은 볼품없는 동양 악기를 얼마나 신기해하고 해금이 내는 커다란 울림에 얼마나 놀라워했을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낯선 동양악기 해금이 해낸 장한 일은 이곳 이민자처럼 신세계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일에 앞장 서 있다고 여겨졌다.
생명이 퍼덕이는 이민 광야에서 힘든 음악의 길을 선택한 1세, 1.5세 2세에게 열린 기회, 아름다운 꿈과 힘을 보여주는 이 연주회는 고차원 지지였다. 두 줄 뿐이라는 해금의 핸디켑은 바로 이민자들의 언어의 핸디켑, 문화의 핸디켑을 보완, 대변해 주는듯 했다. 그 핸디켑을 딛고 주류사회라는 트롬본을 위시해 현악기군으로 편성된 서양악기와의 절묘한 조화,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은 청소년들에게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혼신을 다해 쏟는 이 협연은 참여의식과 동질감의 좋은 체험이었을 것이다.
음악적 성장을 확고하게 세우는데 큰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긍지마져 느끼게 한 분위기였다. 한미음악재단이 존속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이런 음악회를 주도한 단체와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는 뜨거운 박수 받아 마땅했다. 더 좋은 음악적 환경과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차세대를 위한 음악가 후원 양성 재단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꿈나무 솔리스트를 키워 음악인의 꿈을 세계무대에서 펴보이도록 창단된 설립취지는 미래 지향적이다. 바로 격려박수를 아낄 수 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3명 장학생 선발도 음악만큼 아름다운 이벤트였다. 또 트리플 콘체르토에서는 아버지(바이올린)와 아들(첼로)의, 아름다운 음악가족 출연그림도 돋보였다. 화합의 장(場) 음악행사였다고 자부심을 갖는다. 지휘학 전공의 젊은 지휘자는 박진감 있게 귀에 익은 곡들을 선보여 빠른 속도, 경쾌하고 유쾌한 박자를 띄워 흥겹게 신나는 쉼으로 청중들을 안내했다. 지루하지 않은 레파토리 선곡은 그가 젊은 세대의 영향력 있는 주자임을 과시하였다.
서양 악기에만 익숙한 어린 단원들이 해금을 대할 때의 생소함을 뛰어넘어 함께 모여 연습하고, 연주훈련을 통해 해금 같은 동양악기와 친숙해지는 기회 역시 음악인의 시야와 폭을 넓히는 유익한 경험이라 믿어지기에 해금연주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본다.
가슴이 트이며 어깨의 긴장을 녹여버린 음악치료의 효과를 낸 해금과의 만남, 그 기쁨,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 중앙일보
석촌호수 문화공간 이태영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