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찾은 여유                (중앙일보 열린광장 7/23/2020,  그린에세이 9월호에 실림)

                                                                                                                                                이희숙

 

 

 

 

  아침 하늘이 흐리다. 거세어지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때문에 재 봉쇄령이 내려졌다. 집에 거한 지 어언 넉 달이 지난다. 내가 아침 여섯 시에 출근하면 아침과 점심 식사를 혼자 해결해야 했던 남편이 제일 신나 한다. 남편은 몸의 기능이 약해져 먹고 싶은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처지다. 내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코로나 사태가 망설이며 은퇴하지 못하는 나를 집에 묶어 놓았다. 나 역시 면역성이 약한 노약자라 딸은 외출금지령까지 내렸다. 더욱이 수술 후 운전대에 앉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을 의지해야 하는 움츠린 마음에 회색 구름이 드리운다.

 

  구름을 걷어내는 맨 처음 작업은 텃밭을 만드는 것이다. 마당 옆 구석의 잔디를 뒤엎어 옥토로 만들어 채소를 재배할 계획을 세운다. 공기를 흔들며 이슬이 내린 땅은 신선한 기운으로 아침을 연다. 햇살이 기지개를 켜니 땅이 호흡하기 시작한다. 밭을 갈고 이랑을 파고 거름을 섞어 질이 좋은 성분의 토양을 만든다. 씨앗을 뿌린 후 열심히 물을 준다.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딱딱한 땅의 표면을 열면 사이사이로 새싹이 얼굴을 내민다. 어린 손주의 연두색 생명이 태어나듯이.

 

  너무 촘촘하게 싹이 나면 솎아 주어 여유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부모가 아이의 성장을 막는 방해물을 없애 마음껏 자랄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고 줄기가 굵어진다. 잡초를 없애주고 가지치기로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쓸모없는 잡초가 생존력이 강해 더 번성해가는 것은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악의 근성을 보는 듯하다. 가느다란 넝쿨손을 붙잡아 장대를 탈 수 있도록 돕는다. 친구의 친절한 안내가 나의 손을 붙잡아 동행자가 되는 것같이. 열매가 맺힌다. 그 결과는 실로 놀라운 성공이다. 농사를 처음 지어보는 나는 놀라 열린 입을 다물기 힘들다. 상추, 시금치, 근대뿐만 아니라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 호박을 수확한다. 속이 꽉 찬 결실은 우리 내면의 충실한 성숙을 보여주는 듯 흐뭇하다. 거두어들인 재료로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드니 우리 집 밥상은 행복으로 꽉 찬다.

 

  언젠가 외딴 농촌이나 어촌에서 음식의 재료를 손수 마련하여 종일 먹을거리를 만드는 '삼시 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현실성이 없는 나와는 관계없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 주인공이 된 셈이다. 가꾸고 수확하며 기쁨을 맛보고 그로 인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삼식이나 삼순이라고 해도 좋다.

 

  텃밭 가꾸기는 유기농 채소를 자급자족한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물론 물이 귀한 이곳에서 수돗물 요금이 마켓에서 사 오는 채솟값보다 더 많을 수도 있지만, 반면 얻는 것이 많다. 농부의 땀 맺힌 수고와 마음을 이해하기에 그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가깝게 클로즈업되어 보인다. 땅이 품고 발아하여 성장 후 거두는 것은 농부의 정직한 소실임에 틀림이 없다. 60여 년 생의 노력 후에 대가로 주어지는 결실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햇빛과 산소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값없이 받은 자연의 선물을 몸으로 흠뻑 받아 누리고 있음을 감사라는 단어로 표현해 본다.

 

  갓 캐어 흙이 묻은 채소를 나무 아래 앉아 다듬는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흙 속에 코를 대고 향기를 숨 쉰다. 자연의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좋기만 한 시간이다. 나는 하루 일과를 정한 후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야 오늘도 잘 살았다고 생각했던 일 중독자였다. 긴 세월 동안 데이케어센터 문을 손수 여닫으며 내가 아니면 안 될 줄 알았다. 그 교육장도 교사들에 의해 잘 운영되는데 왜 그토록 애타게 뛰었던가. 24시간이 일하기 위해 주어진 것 같았던 나에게 자연은 조용한 가르침을 준다.

 

  무념무상의 시간이 다른 가치를 창조할 줄이야. 성급하게 굴지 않고 사리 판단을 너그럽게 할 수 있는 넉넉함을 얻는다. 처음 겪는 코비드 팬더믹을 침착하고 느긋하게 통과하여 은퇴를 준비하리라. 나는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것이다.

 

  초록빛 여유에서 얻는 선물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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