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워지는 돋보기 속 세상                (그린에세이 7월호에 실림)

                                                                                                                                      이희숙

 

  

 

 

  어릴 적에 나는 눈이 자주 아팠다. 몸이 허약했고 가장 취약한 부분이 눈이었다. 칠판 글씨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아 초등학교 2학년부터 안경을 써야 했다. 안과 의사는 꼬마 단골 환자를 친절하게 진료해 주었다. 처음 안경을 쓰고 나올 때 엄마의 웃는 얼굴이 커다랗게 가까이 다가왔다. 햇살 비취는 밝은 세상이 선명하게 보였고 주변의 물체가 또렷하게 인지되어 좋았다.

 

  그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안경 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그 당시 대전 선화초등학교, 큰 학교였는데도 전교에서 안경을 쓴 아이는 고작 두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곁으로 몰려와 나를 구경거리로 여기는 것이 싫었다. 짓궂은 아이는 '눈깔 4개짜리'라는 별명으로 놀렸다. 작은 얼굴에 걸친 안경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밝아지는 세상과 반대로 안경을 싫어했다. 나의 애물단지가 된 셈이다.

 

  근시인 내가 나이 육십이 넘어서니 가까이 접하는 책과 전화기 속의 글자가 뿌옇게 가물가물 안 보인다. 원시가 왔다. 어쩔 수 없이 돋보기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징표라고 할까. 올해엔 명확한 시력을 위해 돋보기의 도수를 더 높인다. 안경알이 더 두꺼워진다. 내가 가진 안경의 종류가 멀리 보는 것, 햇빛을 막는 것, 가까운 곳을 보는 것으로 세 개지만 가장 애용하는 것은 돋보기다. 책을 읽기 위해 먼저 돋보기를 걸친다. 이젠 절실한 필수품이 되어 내 손안에서 상주한다.

 

  요사이 사람과의 대화 수단으로 통화 대신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내고 받는 것이 편리하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연하 카드도 우편이 아닌 사진과 인사말을 카카오톡으로 보낸다. 한국, 미국과 지구촌의 모든 공간을 초월해 제일 빠른 소통 수단이 되었음을 인정한다. 작은 핸드폰 안에 내 일상이 다 들어있다.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며 전화기 속 온라인 신문으로 세상 소식을 접하고 오피니언이나 칼럼을 읽으며 생각을 공유한다.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글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면 핸드폰 메모 칸에 기록하고 습작한다. 필요한 글과 서류를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는다. 사진을 찍고 정리해 보관하는 장소도 핸드폰이면 족하다. 은행에도 갈 필요 없이 온라인 뱅킹으로 재정을 관리한다. 수시로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찬송도 애창할 수 있어 간편하다. 기능이 좋은 여러 가지 앱을 깔아 사용하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하랴.

 

  핸드폰보다 조금 넓고 업그레이드된 공간이 컴퓨터이다. 항상 책상 앞의 컴퓨터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내 활동 반경이 1m 이내에 있음을 실감한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면 1분도 견딜 수 없는 처지이다. 빠르고 편리한 기기를 코앞에서 사용하며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것에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두꺼워지는 돋보기 속의 세상에 안주한 듯하다. 사물을 보는 안목마저 좁아 드는 것 같다. 사물을 좋고 나쁨,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때 돋보기가 필요하게 된다면 '어쩌지'라는 우려가 든다. 돋보기의 짧은 시야 안에 갇히지 말자. 눈앞에 있는 어려움에 힘들어하고 안일함에 익숙해 있는지를 나에게 묻는다.

 

  가을이 무르익는 주말에 공원을 걷는다. 단풍잎이 보고 싶어 고개를 든다. 채색된 잎의 나뭇가지 사이에 푸른 하늘이 숨어있어 소스라친다. 나무 위엔 저렇게 푸른 세계가 펼쳐있는 것을. 드높고 넓다.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가 날개를 펴고 파드득 날아오른다. 새에게 관심을 주며 멀리 바라본다. 눈길을 돌리니 멀리 있던 산이 보이는가 싶더니 더욱더 멀어지며 작아져 간다. 쉼 없이 쳇바퀴 안에 갇혀 가까운 거리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나를 인식한다. 앞에 놓인 것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어진 일에 충실을 기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큰 숨 한 번 들이켜 내쉬고 멀리 보자. 멀리 보아야 내일의 숲이 보인다. 눈길이 닿는 곳에 내 마음도 머문다. 안경 너머로 떨어지는 단풍잎이 노란 비가 되어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