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027.JPG이태영 작품 #16476 선정릉 뜨

가시고기 나무 / 김영교

야생사과 만자니따 뒷길은 빅베어 산행 트레일 초입에 있다도토리와 솔방울이 지천으로 떨어진 산길이 눈길을 끌고 발길을 부른다. 그 산길을 오르며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재롱 섞인 노래가 술술나와 가슴이 열리기 시작한다. 노래실력을 산이 듣고는 유치원생인가 귀를 쫑긋 했을 거다이슬 젖은 푸른 잎들을 앞세워 산울림 러브콜이 되돌려준다. 이 빅베어의 산길은 꾸불 꾸불 참으로 유연하게 뻗어 있어 그날 아침은 쉽게 오를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아침 등반이었다.

정상에 닿았을 때 팔 벌려 심호흡을 했다팔 벌리자 맑은 흙냄새와 새들의 지저귐산바람이 와 안겼다. 좌우 목운동을 하는데 저쪽 산 중턱에 넘어진 큰 나무 하나가 보였다. 죄 지은 적 없는 벼락 맞은 장엄한 나무의 주검 하나, 내 시야에 잡혀 그 쪽으로 다가 갔다. 놀라웠다. 의젓하게 점잔 빼며 서있는 큰 나무 모습에 오히려 친숙했던 내 시선이었다

나이테 내장이 터지고 시커멓게 불 붙어 온통 다 타 들어간 화상자국이 안스럽게 노출되어 있었다낮게 널브러져 길게 누운 채 모락모락 김이 솟고 군데 군데 진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저 큰 덩치만큼 오랜 세월 푸름과 곧음을 자랑했겠구나숨소리마저 죽이고 살아야 하는 막히고 가려진 그 아래 음지의 키 작은 이웃 작은 야생 들꽃과 땅 수풀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햇빛과 바람을불타서 남은 재 영양분을 내 주며 퍼뜨리기 위해 생태계 순환법칙을 따라 자멸한 것일까? 몇년을 자라 빅베어 가족 중 우람하게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됬을까. 큰 소리 내며 넘어질 때 지구 한 귀퉁이도 무너지며 온 산이 함께 아파하며 신음했을 꺼다.

성긴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위문공연을 온 눈부신 햇살이 공평하게 덮어주며 숨통을 틔워주었다쓸어진 나무는 자기는 죽어가면서 위험한 자기 쪽을 피해 옆쪽 길을 택해 가라고 누워서도 김을 뿜으며 길 안내하고 있었다문득 가시고기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만나보는.

큰 덩치 뽐내며 산 정기 혼자 듬뿍 마시며 위로 위로 뻗어 본의 아니게 햇볕을 독차지한 큰 덩치가 오죽 미안했으면 저 화형도 묵묵히 감당할까 싶었다. 큰 키의 저 나무처럼 본의 아니게 주위 사람들에게 햇빛 가리운 방해전파는 아니었던가. 철없던 젊은시절 척척 으스대다 나 역시 저 나무처럼 피부가 까맣게 타 들어가는 방사선(Radiation)의 화상을 입지 않았던가, 어느 듯 나를 더듬어보고 있었다

흩어져 있는 나의 의식을 건강바구니에 주워 담았다체조를 하고 숨쉬기를 끝내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이 나무 가시고기와의 만남이야 말로 내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 영롱한 아침이슬 관찰이었다.

산정기(山精氣꾹꾹 밟는 등산화 가득그리움의 산허리를 돌아 환속하는 발길은 쓸어진 그 나무의 최후를 기억하고 있었다. 감동이었다우거진 숲속완곡한 산 언덕바지를 부드럽게 뻗어 있는 산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도시 매연에 지친 발길마다 싱싱한 호흡을 찾아주고 광합성 햇볕을 나눠주며 늘 기다림에 서있는 숲이 여간 고맙지가 않았다이 천연 이끼 숲속 산길을 오르내리며 건강의 꿈을 키운 사람들내 딛는 발길 한걸음 두 걸음시선이 바라보는 한 장면 두 장면이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타이르며 등 떠밀어주는듯 했다.

무공해 산바람과 열렬한 스킨십밀착된 내 몸 무게를 은밀히 애무해준 늠름한 트래킹폴의 포옹, 그 나무는 스스로 영양분이 되고 소통이 되는 헌납의 길을 세상무대에 내 놓았다참으로 거룩하고 찬란한 일대기 연출이 아닐 수 없었다자연은 이렇게 자생하는 법을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자연계시를 통해 인간 쪽에서 터득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연은 스승이었다.

아름다운 산행걸을 수 있는 건강한 두 다리새끼에게 자기 살을 먹이는 가시고기, 화상입은 나무의 최후 헌납 현장 목격은 눈뜸이었다. 다 주고 또 주는넘치도록 주는 사람 가시고기, 자기 살과 피를 먹여준 오리지날 가시고기문득 용서의 십자가 사건이 겹치며 나를 애워싸며 일깨워 주었다. 하산하면서 느낀 이 깨달음의 감격이 나를 오랫동안 떨림에 머물게 했다행복한 떨림 이었다.

퇴고 7-2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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