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어머니의 생일, 그날 이후…

정조앤 / 수필가
정조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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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4/28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4/27 16:59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날은 마침 친정어머니의 생신날이었다. 87세 생신을 맞아 네 딸과 사위 그리고 아들 내외가 한자리에 모였다. 막내 남동생은 내려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산호세에서 운전하고 왔다. 테이블에 차려진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착잡한 마음이라니. 나이 많은 노인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치명타를 입는다는데 노모를 생각하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조곤조곤 말했다.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에 계셔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위험하니 교회와 양로보건센터에는 가지 마시라. 사람과의 거리는 2m를 유지하시라. 어머니는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웬 난리를 떠는지 모르겠다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은 암울했던 지난 세월과 예측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어둠은 더 깊어갔다.

불과 2달 전인 설날에도 모였다. 집안의 어른인 친정어머니께 세배를 드린다며 미국에서 태어난 2세, 3세를 합해 29명의 대가족이 모였다. 떡만둣국을 끓이고 빈대떡을 부치며 명절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그 자리에서 노모와의 추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올해는 봄과 가을, 고국 방문과 크루즈 여행을 함께 가기로 마음 모았다. 어머니는 자식이 여럿 있으니 말년이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어머니 생신날 이후로 우리는 만나지 못하고 있다. 가족 단톡방에서 서로의 근황을 묻고 전한다. 코로나19와 관련된 메시지와 동영상이 수시로 날아 들어온다. 어머니는 말이 길어질 때는 마이크를 사용해 글자를 입력하는데 소리 나는 대로 전달되어 가족들을 빵 터지게 한다. 운전할 만큼 정신력이 강해 아직은 자식들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시니어아파트에서 걷기 운동 홍보대사 역할도 하고 텃밭 가꾸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치매 예방에 좋다는 풍경화 퍼즐, 스도쿠를 즐기는데 퍼즐 앱을 아예 다운받았다. 무엇이든 호기심이 발동하면 끝까지 하고야 마는 적극적인 성품이 지금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보고, 듣는 것이 우울한 것뿐인데도 혼자서도 잘 노는 법을 터득한 어머니를 둔 자식들은 그녀에게서 한 수를 배운다.

  어머니를 위한 효도 여행은 잠시 미뤄졌다고 생각하자.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집에 머물 것을 요구하는 긴급 명령 세이퍼 앳 홈(Safer at Home)은 기한이 자주 바뀌며 연장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을 지키고 이웃을 지키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일이 우선이다. 언제쯤이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요즘처럼 평범했던 일상이 그리운 적은 없었지 싶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 날이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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