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호미 (K Homi)     (5월 2일 중앙일보 열린광장에 실림)                          
                                                   이희숙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학교 문을 닫은 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 수입도 없이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지만, 무엇보다 아무 대책 없이 막연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뿌옇고 형태를 알 수 없는 미로 속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혼돈을 탈출하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궁리 끝에 마당 구석의 쓸모없는 잔디밭을 텃밭으로 바꾸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 몸을 쓰는 단순 노동. 땀을 흘리는 수고를 통해 정신적 생산의 가치를 찾고 싶었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씩 이루어 가기로 했다. 나는 창고로 향해 첫걸음을 떼었다.

 

  오랜만에 햇빛을 보는 연장을 나열해 놓고 용도를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우직하면서 널찍한 날을 가진 삽에 눈길이 갔다. 삽은 누구나 사용하여 인기가 많고 넓거나 좁은 구덩이를 파는 데 최고다. 나는 화분 갈이를 할 때 손 삽을 즐겨 쓰지만, 땅을 찍어서 파고 흙을 고를 때는 괭이를 사용한다. 나뭇잎이나 작은 돌멩이를 긁어모을 때는 마치 손가락을 쫘악 벌린 것처럼 끝이 갈라진 갈퀴를 쓴다. 말할 나위 없이 뜰을 청소할 땐 부챗살 같은 갈퀴를 선택한다. 모두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일등공신 농기구다.

 

  그 여러 연장 가운데에서 '' 자 모양의 호미에 마음이 끌렸다. 나같이 근력이 약한 여성에게 어울리는 연장이기 때문이다. 쇠로 만들어져 날, 슴베, 자루로 구성된 모습이 매력적이다. 목 부분은 곡선으로 구부러져 섬세하게 꺾인 각도가 가냘프지만 강인한 여인을 연상케 한다. 슴베는 날과 목을 나무 손잡이 자루에 연결한다. 호미를 존재케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날은 땅을 파거나 풀을 뽑는 데 좋다. 비대칭 삼각형의 삽날은 쇠의 거친 맛으로 좁고 길게 팔 수 있다. 잡초를 제거하는 데 제격이다. 예리하게 불청객을 뽑아내는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는 연장이 곁에 있기에 밭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힘찼다. 마침 비가 내린 덕분에 땅이 부드러워 작업이 수월했다. 생존력이 강한 잔디를 두 차례 뒤집어엎었다. 남편이 삽으로 파서 엎으면 나는 괭이로 흙덩어리를 부수고, 호미로 잔디와 잡초를 골라 뽑았다. 잡초는 튼튼하게 뿌리를 내려 번성하는 근성에 진저리가 날 정도이다. 나도 마음속에 자리 잡으려 하는 걱정의 근원을 송두리째 제거해주는 호미 한 자루가 필요하다. 그것은 내게도 부정적인 요소가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마음 밭을 곱게 다져 옥토로 만드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호미는 옛 여인의 필수 농기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가볍고 손안에 꼬옥 잡히니 어느 곳에든 사용하기 쉽다. 여성에게 안성맞춤인 도구다. 슬기로운 시집살이를 위한 효녀 품목이 아니었을까? 미국의 한국마켓에서 호미를 처음 보았을 때 보물을 발견한 듯 기뻤다. 구매해 온 호미는 내가 정원에서 가장 즐겨 사용하는 연장이 되었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한국 고유의 소형 다목적 농기구이기 때문이다.

 

  기계 산업이 발달한 요즈음에도 호미는 소규모 대장간에서 화덕에서 가열 후 망치로 두들겨 손으로 제작한다. 용광로에서 녹이고 장인의 손길로 태어나는 예술품 같은 느낌마저 든다. 기계로 복사하지 못하기에 가격이 비싸지만,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호미 손잡이에 한글로 '영주 대장간'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채. 경북 영주에서 석 대표는 장인 정신으로 인체공학적인 우수한 농기구를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잘 팔리는 '활용성이 높은 원예용품 톱10'에 들었다는 기사를 보며 가슴이 뿌듯했다.

 

  빌보드 신기록을 낸 방탄 소년단 노래 가사에 '호미'가 등장한다. '나에겐 호미가 있어. 들어는 봤니? 한국에서 온 철로 만든 것인데 최고야! 내 호미로 옥수수도 캐고 너희 뒷마당 돈도 다 캐낼 거야.'

또한 농기구인 호미는 가까운 친구라는 뜻의 호미(homie, homey)를 떠올리게 해 더욱 호평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호미 사진까지 올라와 글로벌 농기구로 발돋움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연장이 된 것이다. '한류 호미'가 드디어 'K Homi'가 되었다. 전통을 중요시하며 한국인의 인내와 끈기로 생존해 세계적인 농기구로 거듭난 호미에 찬사를 보낸다. 오늘도 나는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향한다.

 4.20.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