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대 앞에서

                                                                                                                        이희숙

 

 

  가족 앨범을 보던 딸이 까르르 웃었다. "엄마, 머리가 이게 뭐야, 얼굴에 화장도 좀 하고 찍지." 젊었을 땐 으레 부스스한 머리에 민낯으로 사진을 찍었다. 미용실에 갈 시간도 없고, 화장품값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얼굴에 끈적한 액체가 붙어있는 것이 싫기도 했다. 한편 젊음에 대한 자신감도 작용했을 터. 공식 석상에 나설 땐 단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부랴부랴 조금 찍어 바르는 듯 성의 표시만 했다. 품위 유지를 위해 화장은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른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추어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며 매만진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급하게 한 화장 솜씨는 환한 대낮에 발각되기 일쑤이다. 눈썹과 입술이 균형 없이 비뚤어져 있곤 하다. 바쁜 일상에서 얼굴과 머리에 신경을 쓸 여유조차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손질하지 않아도 탄력을 유지하는 피부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면서 말이다.

 

 

  누구나 예뻐지고 싶어 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나 역시 예쁘게 보이고 싶다. 여인이 자신을 관리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와 닿기도 한다. 단정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자세가 좋게 생각된다. 진하지 않지만 정갈하게 다듬어진 여인의 모습이 좋다. 남편은 화장대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서 사랑을 느낀다고 한다. 항상 화장한 얼굴을 유지할 것을 요청하는 남편도 있다고 한다. 나는 출가하는 딸에게 화장대를 장만해 준다. 사랑받는 아내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일하는 프리스쿨에서 모든 아이가 나를 할머니라고 부른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고 정겹게 부른다. 삼십 대에 이 장소에 개원했는데 빠른 세월 탓에 은퇴를 앞둔 내 모습에 깜짝 놀란다. 아이는 "하머니" "함니"라고 제대로 되지 않는 발음으로 부른다. 처음 입학한 아이가 적응할 때 할머니로 비추어지는 내 모습이 그들에게 친근감을 주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제는 익숙해진 탓인지 원장 선생님보다는 오히려 포근한 호칭이라 생각되어 좋다.

 

  세 살배기 생일파티에서 나이를 자랑하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몇 살일까요?" 물으니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보인다. "더 많은데"라고 했더니 다른 손의 손가락 한 개를 펴서 보태며 보여준다. "31이라고?” 물으니 ""이라고 대답한다.

"고마워. 내가 젊어졌네. 할머니가 서른한 살이구나!"

나이 개념이 없는 아이에게 엄청나게 큰 숫자일 테니까.

 

 

  나이가 들어가며 뽀얗던 피부에 검버섯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제 그 점을 가리기 위해 비비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파우더 쿠션을 두드린다. 입술도 붉게 바른다. 늙은 부분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짙게 한다. 머리에 흰 선이 무성히 그어진다. 급기야는 염색한다. 노인의 백발은 면류관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가리는 수고를 하고 만다. 겉모양으로 속 내용을 숨길 수 있을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은 남자도 화장과 성형수술을 하는 나라가 되었다. 남을 인식하여 체면과 예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아내의 어린 시절 앨범에서 변해버린 지금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현재에 보이는 미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모지상주의가 되는 듯해 마음이 씁쓸하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루한 내 생각을 접으면서 보편화한 인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물론 형식을 통해 내면의 충실을 기할 수 있으니까. 곱게 가꾸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일 수 있다.

 

 

  보이는 것보다 꽉 찬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검버섯이 핀 얼굴에 인자한 웃음을 담아 주름 잡힌 인생의 지혜를 품으련다.

 

 

  91세이지만 예뻐지고 싶어 하는 어머니에게 화장품을 선물로 드려야겠다. 긴 세월이 만들어 준 삶의 가치는 더 아름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