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분에게 명상 클래스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받았다. 동네 월간지에 내가 지도하는 '명상의 교실' 안내가 난 것을 보고 관심이 있어 문의전화해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지도하는 방법은 ‘단학’요가를 통해 명상하는 식이라고 알려주었더니 그분은 곧 마음을 바꾸어 그런 명상은 자기가 원하던 방식이 아니라며 아쉬운 둣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요가와 명상을 무조건 분리해 생각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사색을 글을 쓰며 정리해 볼까 한다.
내가 요가를 시작한 것은 거의 십 년 전일이다. 하루 9시간 이상씩 앉아서만 일을 하다보니 체중이 불어나 요가를 시작한 것이 그럭저럭 십년이 된 것 같다. 그동안 학업 때문에 중단한 적도 있었지만, 다시 계속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제 요가는 하루 세끼 밥을 먹듯 당연하고 중요한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해볼때 요가는 언제나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단학’요가 의 유래는 우리 민족의 시원이기도 하다. 기본개념은 ‘천부경’에서 시작이 된다. 81자의 한자로 이루어진 이 신비스러운 경전은 학자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로 시작하여 하나로 돌아가며 그 근본은 결국 인간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사상이 요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 우주와 하나임을, 인간 안에 우주가 있는 ‘한'의 세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정신(천)과 육체(지)가 상호 작용하여 '하나(일)'를 이루는 개념이다. 인중 천지일 - 이것은 관념으로 이해하긴 어렵지만 직접 요가를 하여 기를 터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단학의 관점에서 보면 요가와 명상은 같은 것이다. 요가를 할 때 나는 내 몸이 지구와 하나 됨을 느낀다. 한 방울의 물이 결국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명상이란 무엇인가? 자기 한 몸을 잃어버리고 큰 자아인 우주의 혼과 하나가 되는 '무아'의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건 요가를 하며 자신의 숨을 고요히 지켜볼 때 어렵지 않게 체험할 수 있다.
단학을 하게 되면 삶 자체가 명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과 쉬운 '단학 명상'을 나누고 싶다. 그것은 미소이고 포옹이며 우리가 모두 하나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자연으로, 시원으로 돌아가 순수한 인성 회복을 추구하는 삶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위대한 사랑'이 깨달음이라면, 우리나라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게 - 넓게 인간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 과히 이와 같지 않겠는가.
요가와 명상을 하며 지구와 나, 자연과 실로 하나되어 순수한 행복과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가?
건강한 몸은 건전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제 각자 모든 고정 관념과 선입견에서 깨어나 참자아를 회복하고 함께 지구를 돌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