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영상으로 떠나보낸 어머니

이희숙 / 수필가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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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5/12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20/05/11 17:24

 

 

 

  영상으로 떠나보낸 어머니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구순 생일에도 건강하고 고우셔서 수년은 더 사실 거라고 장담했던 때가 속절없다.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응급실로 들어갔고 병원을 거쳐 양로병원에서 안정을 찾으며 회복을 기대했다.

  불과 40일 후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됐다. 감염에 취약한 양로병원이 폐쇄됐다. 안전 수칙을 위한 정부의 시책에 순응했다. 마비 상태로 몸을 못 움직이고 음식을 혼자 못 드시는 상황에서 애가 탔지만 인내해야 했다. 몸무게가 준다는 소식에 음식을 준비해 가도 반입이 거절됐다. 간호사를 통해 전화로 이야기를 전했다. 말씀을 못 하시니 "으응"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단절된 공간에 혼자 남겨져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행여나 우리가 올까? 기다리셨을 텐데. 집으로 모셔 오지 못하는 죄책감이 날 짓눌렀다.

 

  치매기에 인지력이 저하되셨는데도 상황을 아셨을까? 양로병원을 폐쇄한 지 6주 만에 숟가락을 놓으셨다. 아니 숟가락을 드실 기력이 없었을 것이다. 간호사는 음식을 삼키는 방법도 잊히고 기능이 마비된다고 했다. 매일 밤 전화기를 켠 채 머리맡에 놓고 잤다. 5월 첫날 새벽 다섯 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소식을 듣고 뛰어갔을 때는 이미 세상의 미련을 내려놓고 본향으로 떠나신 후였다. 병원장에게 간청하여 간신히 병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침대 위에 주무시듯 누워계신 모습이 어머니와 마지막 대면이다. 옆 할머니도 모르셨다고 한다. 평화스럽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셨다. 내가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으셨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미안해요. 엄마!" 만을 반복했다. 떠나시는 곁에서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다.

 

  장례식도 명으로 제한되어 가족조차 다 참석할 수 없다. 한국 가족은 2주 격리 기간 때문에 참석할 엄두도 못 낸 채 아들, 딸 두 명만 힘겨운 발걸음을 떼어 왔다. 가시는 길을 아름답게 배웅하고 싶었는데. 슬픔을 꿀꺽 삼키며 옷장에서 입고 가실 가장 멋있는 옷을 꺼냈다. 앨범을 꺼내 추억을 비디오로 담았다. 기도는 아들, 메시지는 사위가 맡고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던 찬송가도 골랐다. 송별 인사는 손주들, 환송 축가는 손자, 특별 연주는 증손들이 준비했다. 우리 집에서 천국 환송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가족과 친지에게 알렸고 많은 분이 영상으로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다. 예배 실황을 화상 줌을 통해 중계했다. 스크린에 모습이 조각조각 떠 큰 화면을 채웠다. 각 가정에서 연결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배웅했다. 먼 거리였지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생전 처음 겪는 새로운 형태의 장례식이다. 한국과 미국 식구가 하나 되어 어머니를 추모했다. 영원한 사랑으로 가슴에 남기며 간직했다. 못다 한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예배를 마친 저녁 식사 후 가족과 감사하며 친목을 나누는 시간에 내가 다리를 헛짚어 넘어졌다. 곧 괜찮아 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오른쪽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내일 장지를 가기 위해 참으려 했지만, 점점 통증이 심해졌다. 가족들의 권유로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로 갔고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골반 골절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다음 날 새벽에 골반에 핀 세 개를 박는 수술을 받아 장지에 참석하지 못하는 불효를 저질렀다.

 

  어머니를 환송하는 날, Hollywood Forest Lawn 장지에서 Viewing은 다섯 명, 야외 하관 예배는 열 명밖에 참석할 수 없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의한 새로운 규제이었다. 영상 채팅으로 중계해 가족과 친지가 동시에 나누어야 했다. 친지를 모시지 못해 아쉬움이 컸지만, 기도와 메시지로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 전화기의 화상채팅으로 어머니를 배웅한다.

 

  평화로운 잔디에 사슴도 방문한다. 빨간 장미꽃으로 장식한 관 속에 어머니가 누워 계신다.

아기처럼 하나님 품에 폭 안기신다. 모든 가족은 잊지 못할 사랑을 간직하며 헌화한다. '이제 하나님 품에서 편히 쉬세요. 다시 만나는 날까지 먼저 가신 아버지, 아들과 행복하세요.'

어머니께서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다. 외롭지 않게 가시는 뒷모습을 본다.

 

  묘지 너머 푸른 하늘에 어머니의 미소가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