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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0초였습니다. 1994년 1월17일 새벽 4시31분, 동트기 전 고요는 그 짧은 순간 아비규환으로 바뀌었습니다.

 

LA 북서쪽 20마일 지점 노스리지에서 시작된 규모 6.7 강진이었습니다. 진동과 동시에 벽과 천장이 무너졌고 땅이 솟아올랐습니다.

깨지는 소리, 무너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여 폭탄소리처럼 남가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반경 85마일내 건물 4만여채가 무너져 60여명이 숨졌고, 5000여명이 다쳤습니다.

 

이 때 교회마다 새벽기도하러 나온 성도들이 예배당을 꽉 메웠습니다. 동양선교교회의 임동선 목사(2016년 9월24일 93세로 별세)께서 새벽기도를 인도하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갑자기 기도하러 나온 성도들이 많아진 모습을 놓고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할까 합니다. 하나님, 가끔 적당히 흔들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갈 곳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환란을 당할 때 어디로 가겠습니까? 갈 곳이 없습니다. 주님 앞이 아니면....

그리고 그곳이 가장 안전합니다. 또한 온전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아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울다 못해 울보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울어대면 엄마는 모든 일손을 내려놓으십니다. 꼭 끌어앉고 젖부터 먹이십니다. 어린아이에게 논리가 필요한가? 계산이 필요한가? 학식이 필요한가? 경험이 필요한가? 그냥 울기만 하면 됩니다. 엄마가 아니면 나는 죽는다고 울면 됩니다.  

 

예수믿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도 없는 눈물의 백신이 있습니다. 그냥 울면 안 됩니다. 주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해 울어야 합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울어야 합니다. 아니 십자가를 붙들고 울어야합니다. 그 눈물이 치료의 백신이 되는 것입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애통의 눈물로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합니다. 이 환란의 비바람이 지나가도록, 성령의 임재와 함께 울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재난을 피할 유일한 길입이다.

 

개인간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로 사회 단절의 고통이 미묘한 사회적 고통을 앓게 하고 있습니다. 국가간 통제로 국제 사회의 이동의 단절이 고난 벽을 만들었습니다.  세계 경제의 지표가 나락으로 떨어져, 모든 기업과 사업체가 쓰나미를 만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 위기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과 의료진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때, 참으로 성도들이 찾아야할 백신, 교회 공동체가 찾아야할 백신은 무엇인가? 바로 영혼의 백신, 눈물의 백신입니다.

 

우리 육체에는 3가지 액체가 존재합니다. 땀과 피, 그리고 눈물입니다. 

이 세 가지 액체는 생명을 유지하고 삶의 원동력이 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액체는 오직 건강한 생명체에서 흘러나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영혼을 살리고, 깨끗하게 하고, 활력을 더 해주는 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눈물 마르지 않았는가? 스스로 자기 성찰과 자기 점검이 필요할 때입니다.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사재기 현상이 보편화된 지금, 성도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영혼에 눈물이 있는가 살피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애통이란 말씀의 헬라어 원문 동사로 펜쎄오'(πενθέω/pentheo)입니다.

그 원문의 뜻은 “내 안에 있어야할 하나님의 의가 없고 정작 없어야할 죄로 인하여 아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없어야 할 것은 있고 정작 있어야할 하나님의 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슬픈 것은 그러한 내 영혼의 모습을 자책하며 가슴을 찢는 통렬한 울부짖음과 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총 31,089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제일 짧은 구절이 요한복음 11장 35절입니다. 예수께서 우셨다 “JESUS WEPT”입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감람산을 중심으로 3번 우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베다니 나사로 무덤 앞에서(요11:35), 둘째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시면서(눅9:14), 셋째로,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히5:7)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6: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엘서 2장 13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또한 에스겔 18 장 30절 말씀을 가슴에 비수처럼 꽂아야 할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더욱이 이사야 55 장 7잘 말씀에 앞드려야 할 것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런한 회개 촉구의 말씀은 영혼의 피, 눈물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내 영혼은 눈물이 있는가? 내가 흘리는 눈물은 단순히 물 90%, 소금 7%, 점액소 1% 로 구성된 육체적 분비물일 뿐인가?

 

영혼의 눈물이 메말라버린 영적 건조증 환자는 아닌가?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가 단절된 영적 녹조현상이 내 영혼에 나타나 있지 않은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천국은 메마른 눈(Dry eyes)으로 들어 갈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내 영혼의 삭막함을 보고 울 수 있는 눈물, 이웃의 아픔을 보고 아파하는 눈물, 불의와 불경건한 세상을 바라보고 긍휼히 여기는 눈물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눈물 없는 심령, 사막화 되어 버린 자신의 영혼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울부짖어야 하겠습니다.

 

잃은 양떼를 위한 중보의 눈물, 영혼을 잉태하기 위한 해산의 눈물,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 복음화를 위한 애국의 눈물, 영혼 구령과 열방을 위한 선교의 눈물이 요청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천국을 소망하며 나그네 인생길 하루 하루를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며 자신을 날마다 쳐서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거룩한 울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울 때입니다. 주님 앞에 울며 부르짖을 때 흐르는 그 눈물의 백신이 우리를 살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울보입니다.(장재언) 1.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