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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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5 20:43:54 (*.119.25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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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가 뭐길래   

 

                                                              김카니

 

  공항은 붐볐다. 여섯 시간 후면 보고 싶은 손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흥분된 마음 으로 탑승을 기다렸다. 어디론가 떠날 때는 항상 설렘으로 그 시간만큼은 행복하다. 하와이 호놀루루로 여행하는 승객들에게 탑승이 시작되니 준비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행이 일찍 기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옆자리는 누가 앉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건강하고 잘생긴 젊은 남자였다. 나이도 제법 있어 보였다. 아직 결혼 안 한 딸이 있어서 청 년들만 보면 눈에 얼른 들어온다. 몇 마디 인사 정도만 나누고는 그 청년은 바로 이어폰을 꽂 고 기내 영화를 틀었다.

  나는 깜박 잊고 이어폰을 준비하지 못했다. 음악 듣기를 포기하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한 권을 다 읽어갈 무렵 앞에 앉은 어린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선잠을 잔 것 같았다.

조금 있다  뒤에서도 아이가 징징대는 소리가 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인상쓰는 사람이 없었다. 짜증이 났지만 나도 손자가 둘이나 있다는 생각에 참았다. 우리 애들도 제 엄마 아빠 를 힘들게 하면서 갔겠지 생각하니 우는 애들이 안쓰럽기만 했다. 언제부터 내가 이토록 너그 럽게 변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곧 호놀루루 공항에 착륙한다고 기내방송이 나왔다. 하와이는 해마다 여름이면 큰딸네 가족 과 오는 여행이다. 일 년에 두 번씩 가족여행이 정해진 것처럼 이어져가고 있다.

올해는 오아후 섬 코 올리나 디즈니 리조트에서 손자들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되었 다. 이곳은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에다 하와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푸른바다가 있는 곳이

다.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디즈니랜드의 야심작이라고 한다.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즐겨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꿈은 하루도 가기전에 사라져 버렸다. 큰손자는 아침 일찍 엄마를 따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킷즈 클럽에 갔다.

선착순이라 부지런하지 못하면 매일매일 다른 좋은 클래스를 놓친다. 충분히 못 자고 나가는 게 싫어서 안 가겠다고 울고불고 때를 쓰면서도 따라 나간다. 아이들이 있는 젊은 부모들은 다 모인 것 같다. 사위는 수영장 주변 좋은자리 잡겠다고 일찌감치 나가고 나와 이제 14개월 된 작은손자만 남아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작은손자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방 저방 다니며 쓰레기 통 뒤지고 무엇이든지 손에 잡히는 것은 버리고 말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유 먹일 시간에 우유병이 안보여 한참을 찾다보니 결국 쓰레기통에서 나왔고 큰손자 신발이 안보여 구석구석 뒤지다보니 싱크대 캐비닛에서 나왔다.

거기다가 밥은 한 시간을 따라다니며 먹여야만 했다. 애들이 돌아와 진이 빠진 내게 수영하러 나가자고 하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일찌감치 새벽 운동을 하기위해 호텔 밖으로 나오니 앞에 펼쳐진 바다가 너무 푸르 렀다. 많은 관광객들이 행복한 얼굴로 조깅을 하는 모습도 신선했다. 가까운 곳에서 코나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져보았다. 코나커피는 세계 최고급의 맛있는 커피라고 한다. 수작업이라 더욱 환상의 맛이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이런게 아닌가 싶었다.

멀리 하와이까지 와서 호텔에서 모닝 커피 한잔 여유있게 못 마시지만 눈만 마주치면 눈웃음 을 치는 손자녀석의 모습이 마치 인사동 상점에 걸려있는 웃고있는 하회탈 같아 마음은 행복 하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밖으로 나온 어느 날은 해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려고 하는 석양이었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붉고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하늘에 크게 번져오는 타는 듯한 노을 뒷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버리고 아이를 내려다보니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천사 같았

다. 할머니 노릇은 아무나하는 게 아니다 싶다가도 잠든 아이를 보면 이게 행복인 것 같다. 언젠가 의사가 딸네집에 간다는 내게 어린애들은 눈으로만 돌봐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의 말을 듣지 않아서 허리병이 재발 되었나보다. 통증이 심하게 온다. 당분간 치료를 열심 히 받아야 할 것 같다.

  할머니가 좋다며 양쪽에서 매달려 서로 품에 안기려할 때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려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소중하게 받아드리려고 한다. 손자가 뭐길래 기대했던 하와이 의 여행은 다음해로 미루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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