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그릇


   처음으로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던 날,

가족 단위의 외식이 별로 없던 그 시절엔 항상 온 식구가 한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도시락이라는 독상을 혼자 받게 된 것이다. 도시락 반찬이 궁금해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부엌을 연신 들락거렸다.

첫날이라고 어머니는 언니들 도시락에도 자주 안 넣어주던 장조림과 달걀말이를 싸주셨다. 그 후로 그런 반찬은 생일에나 구경할 수 있었고 도시락 반찬은 거의 매일 멸치볶음과 콩자반이었다.

   반찬 내용은 비슷했지만 내 도시락통은 친구들과 조금 달랐다. 급우들 도시락은 대부분 흰 알루미늄이었는데 내 도시락은 때깔 고운 노란 색이었다. 언니 둘에 동생 것까지 아침마다 도시락을 네 개나 준비해야 하는 어머니는, 반찬은 차별화할 수 없지만 한 번 구입하면 오래 쓰는 자녀들 도시락통은 약간 더 투자하여 차별화를 시도했던 듯하다.

   내 유별난 그릇 사랑은 그때부터가 아닌가 여겨진다. 지금도 내 집 찬장엔 거의 쓰지 않는 빛깔 고운 그릇들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다. 집을 옮길 때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정리하지만 이사하고 나서 살펴보면 그릇은 거의 모두 챙겨 오곤 한다.

   차이나는 레녹스나 로젠탈 같은 견고한 것보다 리모주처럼 부드럽고 무늬가 고운 브랜드가 더 마음에 든다.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의 고향이기도 한 리모주는 그곳에서 나오는 특수한 진흙으로 만드는 도자기로 유명한데 디자인과 색상이 뛰어나다.

   티 포트와 찻잔으로는 아서 우드 앤 스트라포드셔가 우아하다.

언젠가 친구들과 스코틀랜드를 여행할 때였는데 어느 고성에서 샌드위치를 곁들인 오후의 티타임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때, 내 집 찬장에 귀하게 모셔 놓은 몇 안 돼는 우드 앤 스트라포드셔 티 포트가 그곳엔 한 테이블 가득이어서 놀랐던적이 있다.

   딸아이에게 준다는 핑계를 대고 오래전에 리모주를 한 세트 사 뒀었다. 결혼하게 됐을 때 딸에게 보여줬더니 대번에 머리를 흔든다. 색상이 요란해서 거기 담긴 음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딸이 그러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면서 그 정도의 변명은 나 자신에게 필요했을 터이다. 딸은 무늬없는 흰색 로젠탈을 택했고 리모주는 내 집 찬장에서 처녀로 늙어가고 있다.

   아들과 딸네와 같은 도시에서 가까이 살게 된 후부터 내 집 부엌엔 두 집에서 날라 오는 음식이 늘고 있다. 음식을 담아주는 용기도 나날이 쌓인다. 그 중 플라스틱은 거의 아들 집에서 온 것이고 유리그릇들은 딸네 집에서 온 것이다.

   음식을 담아주는 마음이야 플라스틱과 유리그릇처럼 차이가 나지 않겠지만 내게 음식을 담아줄 때, 알뜰한 며느리는 제 찬장을 열고 지금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도 아깝지 않을 용기를 고르고 딸은 엄마가 좋아할 깜찍한 유리그릇을 집어 든다.

   흠 하나 가지 않게 애지중지하던 보석들이었다.

   깨어질세라 힘주어 집어 들지도 못하던 유리그릇들이었다. 기를 땐 아들과 딸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