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이 그립다 3-9-2020
햇살 포근한 주말 오전이다. 오늘도 흥얼거리는 노래는 ‘얼굴’이다. 그 ‘얼굴’이 너풀너풀 날아와 나에게 안긴다. 옛날 서울 갔을 때 큰 오라버니한테 배운 바로 그 노래이기 때문에 그리움 그 차제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로 시작되는 '얼굴'이란 노래다. 예술과 문학의 여정을 펼쳐준 그리운 얼굴의 그 눈빛을 나는 잊을 길이 없다.
이병률시인의 시를 보면 ‘얼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얼’은 영혼을 뜻하고 ‘굴’은 통로 내지 길을 뜻한다고 하니 얼굴은 ‘영혼의 길’인 셈이다. 거푸 에이는 슬픔을 겪었다. 땅속으로 자즈라드는 줄 알았다. 나는 탈진상태에서 흉가처럼 꾀 오래동안 빈집으로 살았다. 얼이 빠져 있었다. 빠진 얼을 되찾느라 전문가의 심리 치료를 받았다. 뼈 부르진 발로 기다싶이 방콕에 머물러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욕창의 습격을 받고서도 꼬박 11주 동안 얼굴을 홀대했다. 씻어 주지도 않고 가꾸지도 못 해줬다. 거울을 마주 볼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사람 얼굴이 왜 신체의 제일 상단,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있을까? 집으로 치면 대문이다. 하늘을 향한 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이 앞을 보는 정면에 눈과 입이 붙어있어 위험의 극소화를 도모한다. 이마, 눈썹, 속눈썹, 코, 귀, 입, 입술, 뺨, 이빨, 턱 다 각기 다른 기능이지만 얼굴을 만든다. 우열을 다투거나 힘자랑하지 않고 좁은 면적에 질서 있게 자리 잡고 조화롭게 얼굴을 이루고 있다. 생명을 위한 지체로서 존재의 의미를 다 하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 표정은 생명을 더 푸르게 춤추게 하는 지휘봉이다. 얼굴 표정은 본인만이 관리할 수 있는 오리지날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표정은 다양하고 독특하다. 희로애락이 전이되고 동화된다. 바로 소통이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없으면, 목젖 내놓고 웃는 입이 없다면, 가슴을 뛰게 하는 목소리에 입술이 열리지 않는다면, 감동도 감격도, 기쁨도 고마움도 없을 것이다. 느낌은 표정을 거부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신나는 세상, 아름다운 사람들과 교제하라고 신체부위 상단에다 올려놓은 그 정밀, 정확한 초상화는 완전하고 유일한 신의 작품, 바로 인간의 얼굴이 아닌가!
사람의 얼굴에는 안면 근육 80개가 있고 그 80개의 근육으로 7천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표정마다 독창적이고 즉흥적이니 표정 관리 매뉴얼이 따로 없는 게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예습 복습을 하면 직업적이 되기 때문에 리허설은 배제된다. 행복하고 즐거워 웃을 때 얼굴은 자연스럽다. 주위가 환해진다.
얼굴은 똑 같을 수가 없다. 몹시 닮아도 쌍둥이도 똑 같지 않다. 성형미는 붕어빵처럼 서로 닮아있다. 독창성이나 고유성이 결핍돼 있어 개성미가 없다. 요즘은 성형수술로 보기 좋게 업그레이드도 한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얼굴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보이지 않는 고위층의 영향력이다. 얼굴을 우지좌지 한다. 수질이 좋으려면 상수원이 좋아야 하듯 수질은 표정이고 표정을 관리하는 생각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상수원이란 얘기다. 풍부한 표정의 축복은 보이지 않는 저 위에 있는 풍요로운 생각에서 온다. 수질이 좋으려면 상수원이 좋아야 하듯 수질은 표정이고 표정을 관리하는 생각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상수원이란 얘기다. 풍부한 표정의 축복은 보이지 않는 저 위에서 부터 풍요로운 생각에서 온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때 생각의 근원이 표정으로 흘러내린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사람의 얼굴보다 더 좋은 추천서는 없다. ‘동그라미 그리다가’ 에 포개지는 그 빛나는 ‘얼굴’이 피어난다. 그 얼굴의 표정은 고요함이다. 그 고요함에 잠긴다. 내 삶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그 멘토의 부재가 진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통하던 내 작은 우주, 그 고요함의 응시가 아침 햇살로 번지고 있다. 오늘 부터라도 상수원 관리를 잘 하고 볼 일이다. 언제 보아도 관리가 잘된 반가운 얼굴은 오로지 내 몫으로 남는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동그랗게 동그랗게 매돌다 가는 얼굴-
3-9-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