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그 아름다운 - 김영교
재혼을 앞둔 친구가 있다. 인생의 늦가을을 맞이한 나이다. 이 나이에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노출을 극히 꺼려하기 때문에 나 역시 재혼 이야기를 한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지금 재혼을 앞둔 친구는 남편과 사별한지 15년이 훨씬 넘었다. 자녀들 잘 키웠다. 학업 다 마치도록 한 배후 힘이였다. 좋은 짝, 좋은 가정을 꾸미도록 성의껏 한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한 친구다. 손주도 여럿 봐 이제는 할 일 다 한듯 보인다. 친구는 조용하게 살면서 봉사활동과 여행을 하면서 노년을 나름대로 기동력 있게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친구는 재혼을 의논해왔다. 친구는 나이에 비해 얼굴도 몸매도 곱다. 그동안 많은 재혼자리를 주위에서 알선했지만 늘 웃으며 거절 했기에 약간 놀랐다. 친구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들려주었을 때 나는 재혼을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쪽 다 사별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그 절절한 외로움을, 가슴 저미는 슬픔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남은 인생의 후반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또 심경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사람을 보는 눈이 따뜻해진 것이다.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베푸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서로 아끼며 여의는 슬픔을 승화해 앞으로 아름다운 꽃밭으로 가는 길을 간다면 격려해줄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아픔도 다독 일 줄 아는 성숙한 나이가 된듯 싶었다. 나는 없고 우리만 있을 때 꽃길은 그들 부부의 것이 된다. 혼자 사는것도 후반부 남은 삶의 반려자를 만나는 것도 신비한 엮임임을 깨닫게 되었다. 커다란 손의 간섭이라고나 할까, 의도라고나 할까.
나의 찬성을 얻어낸 가장 감동적 이야기는 이렇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헌신이나 희생에는 서툰 게 우리들의 현주소이다. 전부인이 암으로 투병할 때 이 예비실랑은 병간호를 도맡아 해냈다고 한다. 빨래며, 청소, 더 나아가 장보고 음식하고 검색하여 건강식으로 정성껏 간병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없어진 부인에게 투병의지를 심어주느라 본인도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집안일을 도맡아 한 그 불편과 수고, 그리고 그의 머리 삭발은 암 투병에 동참하는 마음(Empathy)이었다. 나는 친구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사석에서 목사님의 축복을 이미 받았기에 발걸음을 내디디기가 한결 수월하다 했다. 많이 늦었고, 한번 하기도 힘든 혼사를 두번하는 일이 어디 쉬운 결단인가. 남의 눈을 더 의식했고 더 심사숙고했을 두 사람이다. 나이가 들 수 록 내 한 몸 편안해 지고 싶겠지만 한 방향을 바라보며 마음 포개어 하루하루 건강하게, 찡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100세 시대,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멀리 이민 와서 노인 아파트나 양로병원에 살면서 오지 않는 자식들의 방문을 기다리는 외로움, 그들의 고독의 깊이를 자신 말고는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들의 생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소외된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신문 기사를 접할 때면 전문적인 <재혼상담소> 하나쯤 있어 지금 부터라도 시니어 짝짓기 운동을 펼쳐봄직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캄캄한 밤이 창밖에 있다. 죽음같은 외로움 뒤 끝이라 절실하다. 재혼! 그만큼 아름답다. 외로움 병 더 깊어지기 전에 하는 재혼이야 말로 파격이다. 그래서 재혼은 아름다운 파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