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창작

Articles 99

 

재혼, 그 아름다운 - 김영교

 

재혼을 앞둔 친구가 있다. 인생의 늦가을을 맞이한 나이다. 이 나이에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노출을 극히 꺼려하기 때문에 나 역시 재혼 이야기를 한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지금 재혼을 앞둔 친구는 남편과 사별한지 15년이 훨씬 넘었다. 자녀들 잘 키웠다. 학업 다 마치도록 한 배후 힘이였다. 좋은 짝, 좋은 가정을 꾸미도록 성의껏 한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한 친구다. 손주도 여럿 봐 이제는 할 일 다 한듯 보인다. 친구는 조용하게 살면서 봉사활동과 여행을 하면서 노년을 나름대로 기동력 있게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친구는 재혼을 의논해왔다. 친구는 나이에 비해 얼굴도 몸매도 곱다. 그동안 많은 재혼자리를 주위에서 알선했지만 늘 웃으며 거절 했기에 약간 놀랐다. 친구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들려주었을 때 나는 재혼을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쪽 다 사별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그 절절한 외로움을, 가슴 저미는 슬픔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남은 인생의 후반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또 심경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사람을 보는 눈이 따뜻해진 것이다.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베푸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서로 아끼며 여의는 슬픔을 승화해 앞으로 아름다운 꽃밭으로 가는 길을 간다면 격려해줄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아픔도 다독 일 줄 아는 성숙한 나이가 된듯 싶었다. 나는 없고 우리만 있을 때 꽃길은 그들 부부의 것이 된다. 혼자 사는것도 후반부 남은 삶의 반려자를 만나는 것도 신비한 엮임임을 깨닫게 되었다. 커다란 손의 간섭이라고나 할까, 의도라고나 할까.


나의 찬성을 얻어낸 가장 감동적 이야기는 이렇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헌신이나 희생에는 서툰 게 우리들의 현주소이다. 전부인이 암으로 투병할 때 이 예비실랑은 병간호를 도맡아 해냈다고 한다. 빨래며, 청소, 더 나아가 장보고 음식하고 검색하여 건강식으로 정성껏 간병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없어진 부인에게 투병의지를 심어주느라 본인도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집안일을 도맡아 한 그 불편과 수고, 그리고 그의 머리 삭발은 암 투병에 동참하는 마음(Empathy)이었다. 나는 친구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사석에서 목사님의 축복을 이미 받았기에 발걸음을 내디디기가 한결 수월하다 했다. 많이 늦었고, 한번 하기도 힘든 혼사를 두번하는 일이 어디 쉬운 결단인가. 남의 눈을 더 의식했고 더 심사숙고했을 두 사람이다. 나이가 들 수 록 내 한 몸 편안해 지고 싶겠지만 한 방향을 바라보며 마음 포개어 하루하루 건강하게, 찡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100세 시대,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멀리 이민 와서 노인 아파트나 양로병원에 살면서 오지 않는 자식들의 방문을 기다리는 외로움, 그들의 고독의 깊이를 자신 말고는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들의 생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소외된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신문 기사를 접할 때면 전문적인 <재혼상담소> 하나쯤 있어 지금 부터라도 시니어 짝짓기 운동을 펼쳐봄직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캄캄한 밤이 창밖에 있다. 죽음같은 외로움 뒤 끝이라 절실하다. 재혼! 그만큼 아름답다. 외로움 병 더 깊어지기 전에 하는 재혼이야 말로 파격이다. 그래서 재혼은 아름다운 파격이다.

 

 

profile
Attach

Drag and drop your files here, or Click attach files button.

Maximum File Size : 0MB (Allowed extentsions : *.*)

0 file(s) attached ( / )
No.
Subject
Author
59 수필 창작 - 지금도 들려오는 그대 음성 / 김영교
김영교
Jan 14, 2018 336
수필 창작 - 지금도 들려오는 그대 음성 / 김영교2017.12.10 14:32 김영교조회 수:64 김영교 세모의 12월이다. 시집을 펼쳤다. 시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 주변에 탱탱하게 서있던 사람 나무들, 암세포의 집단 공격을 받은 후 먼저 떨어져 간 문우들이 그리...  
58 수필 창작 - 흙수저와 차 쿵/ 김영교 4
김영교
Feb 27, 2018 267
흙수저와 차 쿵/ 김영교 두달 전이었다. 친구가 사는 지하 주차장에서 낸 큰 차사고로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많이 아프다. 아주 가까운 구역친구가 아들을 잃었다는 소식에 내 가슴은 덜컥 내려 앉았다. TM병원에서 MRI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환한 오...  
57 수필 창작 - 3월의 단상(斷想) / 김영교 2
김영교
Mar 09, 2018 256
3월의 단상(斷想) / 김영교2018.03.08 01:11 김영교조회 수:30 2018.03.08 01:01 수필 창작 - 3월의 단상(斷想) /김영교 간밤에 비가 왔다. 속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통쾌했다. 퍼덕이던 이웃들이 병들어 고통 중에 있는가 하면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이별을 ...  
56 수필 창작 - 고향 마음과 석송령 / 김영교
김영교
Mar 11, 2018 261
고향 마음과 석송령 / 김영교 밝은 달을 보니 문득 몇 년전 서울행 추석이 생각난다, 귀성객 차량의 물결은 도로마다 넘쳤다. 길이 비좁았다. 나라 전체가 비좁아 갔다. 하늘만 넓고 광활했다. 하늘은 넉넉하게 비를 내려 먼지를 씻어주었다. 답답한 사람들의 ...  
55 수필 창작 - 청포도 강의 / 김영교 2
김영교
May 16, 2018 212
청포도 강의 - 김영교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이육사의 시가 생각나는 7월이다. 오늘은 7월 마지막 날, 읊조리는 시 구절에 피어나는 고향! 그 해 7월 주...  
54 수필 창작 - 발사랑 / 김영교
김영교
Jun 14, 2018 141
발사랑 /  김영교       그 날도 문학모임 약속장소에 시간 알맞게 도착했다. 안도하며 실내를 둘러보는 순간이었다. 턱이 진 바닥을 보지 못해 미끄러지듯 넘어졌다. 아픈 것은 고사하고 창피했다. 근처 한의원을 찾아 침 치료를 받고 여러 날 멍과 삔 고통을...  
53 수필창작 - 맹물의 길
김영교
Jun 14, 2018 116
맹물의 길 / 김영교2018.06.11 02:23 김영교조회 수:13 맹물의 길 - 김영교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이다'. 중국의 철학자 노자의 말이 떠...  
52 수필 창작 - 길이 아니거든 가지마라 / 김영교
김영교
Aug 12, 2018 170
10월 2019 정지우동창 작품 길이 아니거든 가지마라 / 김영교   김영길선생이 쓴 누죽걸산* 이란 책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컸다. ‘강원도 오지에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로 신토불이 치료법을 제시, 수많은 현대인의 난치병을 고쳐 냈다. 누죽걸산은 그 ...  
51 재미수필 21 - 모든 날의 노래는 / 고학교 후뵤생 8-20-2019
김영교
Aug 20, 2019 247
재미 수필 21 <모든 날의 노래는> / 김영교   어느 날인가 자녀들은 둥지를 떠나 자기의 꿈을 향해 훨훨 날아갔다. 이제 바쁨을 털고 여행도 하고 책도 읽으며 고즈넉한 은퇴 일상을 즐기려는데 갑자기 얼굴에 돋보기안경 하나 앉는다. 여기저기서 불편함이 기...  
50 엔젤 (Angel), 내 사랑아 2/12/2019 1
김영교
Sep 01, 2019 79
엔젤 (Angel), 내 사랑아 2/12/2019   전화 한통이 굵은 선을 그었다, 그날은 입양된지 9개월이 된 날이었다. 남편의 병상을 지키느라  지친듯 밥맛도 밤잠도 멀리 강건너 가 있었다. 집안에 생기를 부어주고 입을 터 말을 주워섬겨 주었다. 이 몸 구석구석 차...  
49 수필 창작 - 사람 손수건 / 김영교 2
김영교
Sep 10, 2019 88
정지우 동창 사진작품 10-20-2019 사람 손수건 / 김영교   지난달에 우리 집은 한인타운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 내외분의 귀한 방문을 받았다. 그 목사는 예수를 등에 업고, 사모는 고구마를 가슴에 안고 오셨다. 만개한 뒷 정원의 탐스러운 군자란이 두 분 ...  
48 수필 창작 - 11월의 나무 / 김영교 1
김영교
Sep 10, 2019 101
화가 박수근 작품 동창회를 다녀왔다.  멀리 서울까지 가서야 한꺼번에 만나보는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참으로 많이 변한 모습 만나고 헤어졌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나누는 담소안에 누적되어있었다. 추억은 가슴 가득 반짝이는 보석이었다.   나는 고교 11...  
47 수필 창작 - 그해 겨울표정 / 김영교
김영교
Oct 04, 2019 93
동창 박일선 작품 3-1-2020 그해 겨울 표정 / 김영교 겨울은 삶의 템포가 늦다. 내 인생의 겨울 또한 그러하다. 서두름 없이 고요히 정체된 기분이다. 무릇 숨쉬는 것들이 동면하는가, 벌레들도 땅속으로 씨앗들도 숨죽인채 웅크린 채 지난다. 지난 가을은 엄...  
46 수필 창작 - 그 사람이 옷이다 / 김영교
김영교
Dec 09, 2019 50
정지우 동창 작품 그 사람이 옷이다 살이 없는 나는 옷을 많이 껴입는 편이다. 긴 소매 옷을 즐겨 입는다. 또 늘 목이 시려 스카프로 목을 감싼다. 철 따라 기후 따라 목은 늘 춥다. 스카프 종류가 아주 많다. 멋을 부리며 유행을 좇는 쪽으로 날 보기도 한다...  
45 수필창작 - 화요일은 루시아와 - 김영교 1
김영교
Mar 04, 2020 118
이태영동창 작품 3-3-2020 화요일은 루시아와 - 김영교     'Tuesdays with Morrie' by Mitch Albom.   제자 미치가 모리 교수를 화요일 마다 방문한다. 교수는 치명적인 루케릭 병을 앓고 있다. 스승의 고통을 지켜보는 제자의 참으로 인간미 아름다운 얘기...  
수필 창작 - 재혼, 그 아름다운 / 김영교
김영교
Mar 08, 2020 44
  재혼, 그 아름다운 - 김영교   재혼을 앞둔 친구가 있다. 인생의 늦가을을 맞이한 나이다. 이 나이에 사랑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노출을 극히 꺼려하기 때문에 나 역시 재혼 이야기를 한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지금 ...  
43 수필 창작 - 그 얼굴이 그립다
김영교
Mar 09, 2020 105
I want to 그 얼굴이 그립다 3-9-2020   햇살 포근한 주말 오전이다. 오늘도 흥얼거리는 노래는 ‘얼굴’이다. 그 ‘얼굴’이 너풀너풀 날아와 나에게 안긴다. 옛날 서울 갔을 때 큰 오라버니한테 배운 바로 그 노래이기 때문에 그리움 그 차제이다.   -동그라미 ...  
42 수필 창작 - 친구의 남편 3-9-2020 2
김영교
Mar 11, 2020 213
박수근의 그림 친구의 남편 김영교      지난주 미장원에서였다. 한 나이 든 남자가 미장원에 머리 자르러 왔는데 글쎄, 친구 숙이 남편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반가워서 조용히 안주를 나누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산 동네에서 토랜스로 내가 이...  
41 수필 창작 - 콜 택시와 이름 / 김영교 2
김영교
Mar 11, 2020 92
콜 택시와 이름 / 김영교 동창 이태영 작품 물빛소리 공원 3-8-2020 콜 택시와 이름 / 김영교 "저는 미국 LA에사는 방문객입니다. 스위스에 사는 질녀 내외와 서울에서 만나 2주 동안 가족 방문하고 있는 여행자입니다. 그 날은 부여 박물관을 가기위해 목요...  
40 수필 창작 - 내 선병질 삶에 / 김영교 3-13-2020 2
김영교
Mar 13, 2020 105
  내 선병질 삶에 / 김영교   영국의 대문호 섹스피어가 말한 적이 있다. “음악을 듣는 순간만은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아름다워지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라고. 이 말은 음악요법을 문학적으로 지지한 말이다. 몸의 주인은 마음이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