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1.29.2020. 중앙일보 열린광장에 실림)                                                                                                                                                                                                                   이희숙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토요일에 영화관을 찾았다. 미국 복판에서 우리말로 한국 영화를 볼 수 
있다니 영상이 돌아가기 전부터 감동이 몰려왔다. 제목은 천문 天問 (하늘에게 묻는다), 영어로 금지된 꿈 
(Forbidden Dream)이다.

 

  "백성은 항상 나를 우러러보고, 나는 백성을 내려다보는데, 올려볼 수 있는 하늘이 있어 좋다. 저 많은 별이 백성인 것을." 하늘을 쳐다보며 하는 세종대왕의 이야기다. 신선한 충격이다. 하늘이었던 임금 자신이 낮은 지위에 있었던 백성을 바라볼 수 있는 별에 비유하는 것을 보니 존경스럽다. 나의 별은 누구일까? 일상에서 눈높이는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내가 가르치는 어린이에게 눈을 맞추려 무릎을 꿇는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수많은 별이 나의 어린이이니까.

 

  같은 이상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을 관노일지라도 친구로 삼는 왕의 관대함에 감동한다. 장영실은 제자리에서 변함없이 가장 빛나는 별, 북극성을 임금의 별이라고 칭했다. "그럼 네 별은 어떤 것이냐?" 묻는 임금에게 "천민은 별을 가질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에게 임금은 북극성 옆에서 반짝이는 작은 별을 가르치며 "저 별을 네 별로 하거라."고 했다. "누워 보거라. 한 하늘을 보며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세종의 말에 둘은 바닥에 누워 하늘의 별을 함께 바라보았다. 선택과 인정은 밤하늘에서 함께 빛을 발할 수 있는 기적을 낳았다.

 

  "합리적인 농사법을 위해 이제까지 사용하던 중국 것이 아닌 우리의 절기에 맞는 시계를 만들어 보자." 임금은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 하늘을 여는 꿈을 꾸었다. 그의 꿈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땅과 하늘에 의한 강수량 측정과 특징적이고 실리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더 나아가 "혼자 스스로 서는 독립된 조선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그러기 위해 백성이 쉽게 읽고 쓰고 배울 수 있는 글이 필요하다."라고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를 백성에게 두었다. 조선을 위한 그의 꿈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의 반포로 목적을 이루었다. 독창적이고 쓰기 편한 스무 여덟 자의 소리글자다. 우리 민족의 자랑이요 자부심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인정받는 훌륭하고 고유한 글자이다. 그분의 고뇌와 피나는 노력의 결실로 부족한 나도 글을 쓴다.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세종은 조선의 독립이 명나라를 배신하게 된다는 슬픈 상황에 부닥쳤다.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신하의 방해가 있을 뿐 아니라 나라의 존속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이 임금을 어려움 속으로 몰고 갔다. 세종은 자신이 만든 천문 관측 간의 대를 헐어버리고 장영실을 파면시켜야 했다. 물론 중국 사신이 목격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였지만, 장영실의 생사는 그 후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 대국 사이에서 생존경쟁을 겪어야 했던 약자의 안타까운 역사를 본다. 그 속에서 굴하지 않고 빛나는 업적을 이룬 세종대왕 앞에 숙연해진다. '금지된 꿈'을 이루어내었기에.

 

나는 꿈을 간직한 채 목표를 향한다. 그런데 그 꿈이 금지된다면? 금지는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원하는 일을 외부적인 조건이나 힘으로 실현하지 못할 때 다가오는 좌절감은 크다. 큰 포부를 품었던 시절에 원하며 이루고 싶었던 것을 포기해야 했던 기억은 아직도 푸르스름한 아픔으로 남아 있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을 네 명이나 둔 맏딸로서 나는 대학을 지원할 때 직장을 가질 수 있는 빠르고 확실한 대학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하고 싶었던 공부에 대한 미련이 아련하게 남아 있는 듯싶다. 이민 초기 미국 대학에 도전하고 싶어 여러모로 물색하며 학교 문을 두드렸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장을 가져야 했으므로 또 다른 산 앞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거슬러 생각하니 환경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위로를 받으려 했던 안위함도 있었던 것 같아 이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려 한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지향하고자 온라인 사이버대학의 입학 요강을 들추어본다. 은퇴 후 시작하는 늦깎이 학생일지라도 주어진 남은 날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꿈을 이루는 길이 어렵고 방해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포기하거나 피하지 말자.'라고 되뇐다.

 

  나의 작은 하늘에 뜬 별. 그 꿈이 떠올라 마지막 빛을 발하는 새벽에 나는 글을 쓴다.

 

 

 

 1.1.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