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의 미인도
박진희
"이건 내 작품이 아니다." 일흔을 앞둔 나이에, 평생 그림을 그려온 화가 천경자는 ‘미인도’라 일컬어지는 한 작품을 두고, 본인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그림을 그려본 사람은 아무리 많은 타인의 그림들과 섞여 있어도 운동장을 채울 만큼의 수많은 아이들 중에 자기 자녀를 바로 찾아내듯이 단번에 자신의 작품을 알아본다.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고민을 하는지 모른다. 아무리 많은 작품을 그렸어도 본인의 숨결, 손길과 순간들을 곧 찾아내기 마련이다. 화가의 예술혼은 흉내 낼 수도, 흉내내서도 안되는 것인 만큼, 예술 시장에 침투한 모작을 가려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버젓이 살아 있는 화가 본인이 가짜라고 단언하는 작품을 진짜라고 우기던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한국 예술계에 큰 실망과 충격을 받고, 모든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뉴욕으로 떠났다. 그녀의 ‘절필은 죽음과도 같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2015년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창작활동이 곧 삶이었던 그녀에게 ‘미인도’ 사건은 간접적인 사형선고였다.
사십 년 전에 나는 천경자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녀의 수필을 읽게 되었다. 한국 여자에게 최고의 가치로 주입돼 온 ‘현모양처’의 삶을 따르지 않고, 독립적인 자아로서 솔직하고 과감하게 살아간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막 대학생이 되던 나는 그녀의 유머, 정직, 용기에 환호를 보냈다. 그녀의 유복했던 유년시절, 첫번째 결혼의 실패, 유부남과의 사랑, 네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진솔한 경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절실 했었다. 살아가는 얘기가 마치 그녀의 ‘나체화’ 같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보여주지만, 관능적이기 보다 고독에 절어 슬프기까지 했다.
젊었던 그녀는 모델을 처녀만 쓴다고 수필집에 적었다. 그녀의 그림들을 실제로 보면, 정말 모델을 썼는지 의아할 정도로 그녀와 너무도 닮아 있다. 서양 여인처럼 눈두덩이 푹 꺼져 있고 큰 입은 닫혀 있고 목과 머리카락은 길며 쇄골뼈가 드러난다. 아무리 꽃에 둘러싸여 있어도 화려한 색상을 써서 그린 여인들도 모두 그녀처럼 한없이 외로워 보인다.
미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미인도’라는 제목조차도 그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며 관심도 없는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고, 그녀는 새로운 세계에 끝없이 도전했고, 내적인 성장과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런 그녀가 굳이 자신을 오십이 넘은 나이에 ‘미인도’라고 지칭하며 그렸다는 것은 전혀 그녀다운 발상이 아니다.
평범한 화가 지망생조차 소유하기도 하는 화실도 없이 자신의 방에 큰 키의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 물감 그릇이 즐비하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그리는 사진을 보고 난 울컥 했다. 남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솔직함은 젊은 시절이나 지긋한 나이에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였다.
그녀의 죽음을 뒤늦게 접하고 마음이 아팠다. 지금쯤 무한한 하늘나라에서 그녀의 예술 세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마도 그녀는 여전히 아니 더욱 그림에 빠져 지상에서는 그리지 않았던 ‘미인도’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