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강과 최후통첩
이탈리아 중부 아펜니노산맥에서 발원하여 아드리아해로 흘러 들어가는 루비콘강은 총길이가 80km에 불과하다. 이 작은 강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고대 로마 시대의 집정관이 해외 원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자신의 군대를 이 루비콘강 북쪽에 두고 단신으로 로마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군단을 그대로 끌고 루비콘강을 건너면 그건 바로 반란을 의미했다.
기원전 49년, 갈리아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귀환하던 줄리어스 시저는 원로원의 폼페이우스가 자신을 암살하려는 것을 눈치챘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시저는 자신의 군대를 그대로 이끌고 로마로 들어가 정적들을 제거했다. 그는 강을 건너기 전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는 이미 사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인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최후통첩을 날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어에 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얼티메이텀(ultimatum)이라는 단어가 있다. 요즘 이 말은 국제 사회에서 너도 나도 자주 쓴다. 그런데 이 최후통첩이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강자가 약자에게 쓸 때 그 효력이 나타난다. 쥐가 고양이에게 ‘너 언제 어느 날까지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 하면 그건 단순한 협박에 그칠 뿐이다.
이런 의미의 표현에는 유독 강의 이름이 많이 쓰인다. 얼마 전에 어느 유튜버가 ‘그 일은 이미 요단강을 건넜다’라는 표현을 쓴 걸 읽은 적이 있다.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표현이 너무 흔하고 요즘은 남녀가 갈 데까지 갔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어서 식상하던 참에 이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한나라 명장 한신도 배수진을 치고, 즉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강을 뒤에 두고 전쟁을 치러 막강한 조나라를 물리쳤다. 그리스 신화에는 사자가 최후에 건너게 된다는 레테의 강이 있다. 이 강물을 마시면 이승의 일은 다 잊게 된다고 하여 세상을 떠나는 무수한 사람들이 이 강에 배수진을 치고 그 물을 마시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고 한다.
우리 민족에게도 이런 뜻의 단어가 있을듯하여 검색해 보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 그 많은 강, 어느 하나에도 그런 의미가 붙은 곳은 없었다. 궁지에 몰린 상대에게 시한을 정해 더욱 곤란한 처지에 빠트리지 않으려는 우리 민족의 착한 심성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그토록 극한 상황에 몰렸던 역사가 아예 없었던 것일까. 6.25동란 중에 우리가 낙동강에 배수진을 칠 수 있었다면 전쟁의 양상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입학하던 첫해, 여름 방학에 시골집으로 내려갔는데 캠퍼스에서 알고 지내던 몇몇 남학생이 편지를 보내왔다. A는 두어 번 편지를 보냈고 B는 답장이 없는데도 석 달 내내 꾸준히 편지를 보냈다. 반면에 C는 9월 초까지 답장이 없으면 우리는 끝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개학해서 캠퍼스에서 마주쳤을 때, A와 B와는 다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C와는 끝내 불편하게 지냈다.
요즘 12월 말로 시한이 정해진 어느 독재국가 지도자의 반복되는 최후통첩을 대할 때마다 C가 생각난다. 참으로 어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