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속 크리스마스    (12.25.2019. 중앙일보 열린 광장에 실림)

                                                                           이희숙 

 
 

 

  12월 달력을 넘긴다. 추위를 더 느끼는 계절이다. 상자를 열면서 흥분된 손이 사르르 떨리며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조립하고 장식한다. 스타킹, 리본, , 루돌프 장식물을 나무에 달고, 손주 모습이 담긴

사진 오너먼트도 건다. 가족의 웃음이 나뭇가지에 매달리며 'Joy'라는 열매도 맺힌다. 반짝거리는 작은 전구가

달린 줄을 빙빙 돌리고,나무 꼭대기 위에 큰 별을 꽂으면 성탄절 나무 장식이 완성된다. 트리의 불빛이 황홀한

날개를 펴며 집안을 밝게 채운다. 벽난로의 불길이 통나무를 감아 굴뚝을 향해 오르고 냉랭한 공간에 퍼져나가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준다.

 

  색다르게 겪은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했을 때였다. 배에서 바라보는 시드니의

전경이 신선했다. 푸른 빛을 배경으로 흰 조가비 모양의 오페라 하우스가 초점이 되어 곁으로 뻗은 하버

브리지가 시내로 이어주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앞으로 다가갔다. 국내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식민지를 확대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룬 여왕의 위엄을 보며 존경심을 표했다.

 

  '퀸 빅토리아 빌딩(Queen Victoria Building)'이라는 사인이 눈에 띄었다. 실내에 들어서니 크리스마스

상품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고 복도의 중앙에 화려한 장식품으로 치장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다.

때를 위해 기다린 듯 고객을 반겼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성탄 빛으로 물들여져 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선물을 고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진열장 속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흘리는 산타의 낯선

크리스마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밖에 나오니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피부로 느낀다고 할까. 거리의 사람들이 반소매, 반바지를 입고 활보했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서 산타 모자를 쓰고 바비큐를 구우며 칠면조가 아닌 새우나 바닷가재, 신선한 해산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산타 할아버지가 수영복을 입고 오실까?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팜 트리 아래에서 쉬는

산타를 상상해 본다. 썰매 대신 파도 위로 요트를 타고 오시려나? 선글라스를 끼고 서핑하며 올 수도 있겠지

. 루돌프의 빨간 코는 태양 아래 그을려 검게 탄 채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지구 반대편의 성탄절 모습을

눈에 담아 익숙해지려고 했다. 흰 눈과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는 없지만, 세계 곳곳의 성탄절 분위기는

여전히 같다.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같기 때문이리라. 하얀색이나 푸른색, 어느 색이 배경이 되든지

크리스마스는 우리를 들뜨게 하나 보다. 산타가 여름과 겨울을 넘나들며 시린 손을 호~ 불다가 이마의 땀방울

을 닦는 모습이 연상된다. 지구촌 어린이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성탄절의 또 다른 모습이다. 풍경과 풍습은

달라도 성탄절이 전해주는 의미는 같기에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느낀 크리스마스를 음미해보았다.

 

  그 후 2년이 넘도록 코비드 19에 의해 온 세상이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는 동안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보내

고 곁을 지켜주던 남편도 신장투석으로 힘든 나날을 견뎠다. 부스터 샷을 맞은 후 겨울방학 동안 온 가족이

청정지역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 유난히 몸과 마음이 춥게 느껴지는 성탄 절기를 따뜻한 곳에서 지내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신장투석 기계가 담긴 가방을 조심스레 모시고 여행길에 나선다. 몸에 연결되었던 줄들

을 풀어내는 새벽 공기가 싱그럽게 느껴진다. 분주하게 체크 절차를 마친 후 마스크 위로 빠끔히 내민 눈동자는 비행기 창 밖에 머문다. 바다 위에 크고 작은 점을 그리는 섬과 하얀 구름 조각이 펼쳐내는 화폭을 보는 듯.

내 가슴은 은은한 동녘의 빛깔로 채색된다.

 

  마우이 공항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우리를 반겨준다. 빗방울이 뺨을 간지럽힌다. 비를 날려 보내는 바람이

다른 냄새를 풍기며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여기까지 어렵게 왔기 때문일까? 계획하고 추진해왔던 지난날과

달리 나는 딸의 의견에 따르며 순종하는 학생이 되기로 한다.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련다. 비 갠 하늘에 무지개

가 선명하게 피어오르며 우리를 반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듯이.

 

  성탄절을 낯선 곳에서 맞는다. 호주에서 그랬듯이 한여름의 성탄절을 경험하며 잔잔한 떨림이 일어난다.

아이와 노인네를 위한 잔잔한 바닷가를 찾았다. 3대 가족 중심으로 즐기는 Baby Beach이다. 파도가 저

멀리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잔잔한 물속으로 한참 걸어 들어가도 물이 허리에 찬다. 딸들이 행동이 둔한

우리를 배려해서 찾은 바다임을 안다. 젊은이들이 산타 모자를 쓰고 서핑 보드를 들고 모래사장을 걸어온다.

바다 저편에서 손주들은 스노클링을 한다. 수영해가면 산호 숲에서 놀고 있는 형형색색 열대어들과 함께

즐긴다. 우리는 점잖게 팔다리를 저으며 헤엄치는 거북이를 쫓아 얕은 바닷속 여행을 한다. 피조물인 물고기와

인간이 하나가 되어 평화를 누리는 듯싶다.

 

  석양이 하늘과 맞닿은 물결을 곱게 물들일 무렵 해변의 작은 교회를 찾았다. 원주민이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하와이안 댄스에 맞추어 찬양한다. 낮고 천한 구유에 태어나 험한 세상에서 그가 찔림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구원의 의미를 되새긴다. 낯선 성탄절에 예전에 경험치 못한 평안을 누린다. 썰물에 의해 멀리 달아나는 파도에 아프고 힘든 사람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실어 보낸다. 기쁨, 희망과 평화를.

지구촌 모든 이에게 하와이 말로 인사한다. "Mele Kalikimaka Makahiki H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