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오르가즘
“여자로 태어난다면 무엇을 가장 갖고 싶으세요?” 한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받은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 (Jordan Peterson)이 대답 했다. “오르가즘을 많이!” 그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최근 <12가지 삶의 법칙>이라는 책과 강연으로 유튜브에서 수백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리며 현대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 그가 여자로 태어난다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오르가즘을 많이 느끼는 일이라니 학자이기에 앞서 원초적인 본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드는 성적인 에너지가 인간 성장에 잠정적으로 큰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피터슨도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어떤 잠재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혹시 그의 아내가 오르가즘을 못 느껴서 불평이라도 하는게 아닐까? 바쁜 일정 때문에 아내를 충분히 기쁘게 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혼자서 이기적으로 오르가즘을 채우곤 하는 것일까? 그건 뭐, 중년의 나이에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닌 척 간과해도 될 법한데 말이다.
뉴스에서 앵커우먼이 ‘오가니즘’을 ‘오르가즘’으로 잘못 발음해서 앵커맨이 폭소를 터뜨려 NG가 난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두 단어는 철자가 비슷해서 자칫 실수로 잘못 발음해서 섹스를 밝히는 듯한 오해를 부르는 경우가 있다. ‘오가니즘‘ (Organism)은 생물학적인 용어로 ‘유기체’란 말인데 한 예로, 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하나의 오가니즘이다. 그에 반해 ‘오르가즘’ (Orgasm)은 섹스의 카타르시스이며 강렬한 감정적 쾌감을 일컫는다. 거의 모든 남자는 짧은 시간이라도 정액이 배출되면서 느끼지만,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약 20% 정도의 여자만 오르가즘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럼 나머지 80%의 여자가 불감증이거나 오르가즘 근처에도 못 간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연하게 친한 직장 동료 둘과 피터슨의 인터뷰 내용을 얘기 하게 되었다. 대학생 딸들을 둔 리사는 오르가즘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게 언제인지도 모른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샌디는 자기 엄마가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칠십대가 되어서야 오르가즘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엄마가 그마저도 ‘오가니즘’이라고 발음하는 바람에, 고쳐주느라 애를 먹었다고 해서 한참을 웃어 댔다.
조던 피터슨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남자들은 여자들이 섹스 중에 오르가즘을 여러 번 느낀다며 부러워하는가 본데,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건 섹스에 관심이 아주 많고, 그래서 엄청난 정성을 쏟는 남녀만이 겨우 얻을 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아마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진심으로 고백하여야 하며,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시를 읽어주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에 깔고, 갖가지 테크닉을 동반한다면, 더욱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행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오르가즘을 자주 느끼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남자들은 인스턴트 음식처럼 필요할 때 재빨리 제공되는 섹스로 만족할지 모르나, 많은 여자들은 반죽에서 시작해서 이스트로 부풀어 오르는 시간, 그리고 완전히 오븐에 구워 지기까지 기나긴 흐름을 타는 로맨스를 꿈꾼다.
하지만 실제로 80%의 여자가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그녀들의 행불행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많은 여자들은 대체로 육체보다는 감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오르가즘 없이, 아니 섹스 없이도 출구를 찾아 살아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나와 눈을 맞추며 미소 짓는 모습에서, 가족 때문에 오랫동안 미루던 일을 해냈을 때나, 친구들과 격의없이 대화하다가 폭소를 터뜨릴 때,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때를 생각해보자. 그런 순간들은 옥시토신과 도파민의 호르몬 분출로 생겨나는 순간의 오르가즘 보다 더욱 오랫동안 깊고 영적인 교감을 선사한다. 출산과 양육의 경험, 자아 성취, 친구들과의 우정, 사회 봉사를 통해 여자들이 느끼는 희열은 오르가즘과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사랑의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결국 피터슨의 대답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3초만에 대답한 ‘만약에 (what if)’ 대해 무슨 철학을 논하고 반박을 하겠는가. 만일 그가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의 바람대로 오르가즘을 많이 느끼는 여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나 살다 보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의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오르가즘 보다 더한 쾌감이 여자들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국산문 10월호, 2019>